과거 정상회담과 다른 점은
역사적인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두번째 정상회담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27일 남북정상회담을 톺아보면, 제각각 크고 작은 난관이 있었다. 북-미 회담의 ‘길잡이’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과 새로 등판한 ‘전략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엮어낼 ‘2018 남북정상회담’은 이전 정상회담과 어떻게 다를까?
■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임기 초
우선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 열린다는 점에서 앞선 정상회담들과 다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1998년 2월에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노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07년 10월에야 성사됐다. 두 달 뒤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10·4 정상선언을 통해 두 정상이 추진하고자 했던 남북관계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한 각종 합의들은 동력을 잃고 말았다.
임기를 4년 남겨두고 첫 남북정상회담을 여는 문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구상대로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게 된다면 앞선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달리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할 기회가 보장되는 셈이다.
■ 북-미 대치 속 남북이 동력 만들어
이번 정상회담이 가시화된 과정도 앞선 두 번의 정상회담과는 차이가 있다. 2000년 정상회담과 2007년 정상회담 모두 북-미 관계가 풀리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햇볕정책’(대북포용 정책)을 밝히며 남북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표명했으나, 취임 첫해인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 등으로 남북 화해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김 대통령은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통해 미국의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어내는 데 깊이 관여하며 급랭한 정세를 반전시켰다.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의 방북 이후 북한의 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 선언과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조처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2000년 3월부터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3차례의 비공개 특사 회담을 열고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2007년 정상회담은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극단으로 치닫던 북-미가 2007년 5차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시설 폐쇄·봉인 등에 합의(2·13 합의)하면서 성사됐다. 앞서 북한은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 포기” 등에 합의(9·19 공동성명)했으나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비디에이)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며 그곳에 예치됐던 북한 계좌를 동결하자 강력히 반발하며 9·19 공동성명 이행을 거부했다. 이후 북한은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으로 맞섰다. 2·13 합의로 ‘북핵 위기’가 한풀 꺾이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8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을 평양에 특사로 보내 2차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경우는 한반도 전쟁위기설까지 나오며 북-미가 팽팽히 대립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둘 사이를 오가며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이끌어내는 등 간극을 좁히고 정세를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앞선 두 회담과 차별성이 있다.
■ 남북이 비핵화를 핵심 의제로 다루긴 처음
한반도 비핵화가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오른 점도 과거와 다르다. 2007년 10월 회담 때도 정상선언에서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문구를 넣는 방식으로 남북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를 에둘러 표현한 적이 있다. 당시는 이미 6자회담에서 ‘북핵 불능화’가 합의(10·3 합의)된 상황이어서 두 정상이 특별히 비핵화에 ‘합의’를 할 부분은 없었던 측면도 있었지만, 북한이 줄곧 ‘북핵 문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의 결과’로 북-미 양자가 협의할 문제라며 남북 간 논의를 거부한 탓도 크다. 그러나 이번엔 남북 정상이 비핵화를 3대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명문화했다.
대통령 임기 중·후반 아닌 초반 성사
남북 합의하면 이행 기회 보장된 셈 과거엔 북·미 대립관계 풀리며 추진
이번엔 남쪽 적극 나서 정세 이끌어 평화정착 주요 의제 2007년과 유사
비핵화 합의가 테이블 오른 건 처음 핵개발 능력 초기 단계였던 북한
이젠 “핵무력 완성” 선언한 상황 평양 아닌 ‘분단 상징’ 판문점서 열려
북 정상, 한국전 뒤 남쪽 땅 처음 밟아 그렇지만 이번 정상회담에는 이전 정상회담의 발전적 계승의 측면도 있다. 우선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주요 의제들인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발전 문제는 큰 틀에서 2차 정상회담 때 다뤄진 주요 의제들과 다르지 않다. 2007년 정상회담 때 합의됐으나 이행되지 못한 △정전체제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공동어로수역·평화수역 지정 등은 이번 회담에서 다시 대화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추진했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공동 번영을 위한 경제협력사업 등도 이번 정상회담과 이후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와 연동해 추후 다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10·4 정상선언도 앞서 남북관계 발전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던 2000년 6·15 공동선언의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5개항의 ‘6·15 공동선언’에서는 “민족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통일의 원칙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북연합제’라는 각자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정하고,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경제·문화·사회 교류협력 활성화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 북한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 수준도 과거 정상회담 때와 차이가 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앞서 북한은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모두 가동하며 6차 핵실험까지 마쳤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기술만 확보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적어도 핵보유국으로서의 능력과 지위를 눈앞에 둔 상태다. 반면 2000년 정상회담 때는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 기술을 확보한 상태였다. 북한은 이미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면서 핵시설 7곳과 플루토늄 90g 보유 사실을 신고했다. 특별사찰 문제로 갈등을 빚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기로 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잔류와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 협정 이행을 약속했다. 대신, 미국은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북쪽에 경수로 및 중유를 제공하기로 했다. 2007년 정상회담 때도 북한의 핵개발 능력은 초기 단계에 머물렀다. 국방부 추산 티엔티 0.8~1㏏(킬로톤)의 폭발력을 기록했던 1차 핵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였다. 이때까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확인되지 않았다. ■ 판문점에서 열리는 첫 정상회담 앞선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이번이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점은 바로 회담 장소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은 평양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냉전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남쪽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진행된다. 한국전쟁 이후 북쪽 최고지도자가 남쪽에 발을 내딛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해 직항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경의선 육로로 방문한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72시간 다리’를 건너 노 전 대통령과는 반대 방향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장소가 판문점인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는 대대적인 환영행사 등 의전도 제한된다. 3군 의장대 사열도 축소된 형태로 진행된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내려 숙소인 백화원으로 가는 동안 수십만의 평양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7년 평양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대표단 규모도 과거 회담들과 차이가 크다. 2000년 회담 때는 각 부처 공식수행원 외에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 특별수행원까지 그 규모가 180여명, 2007년에는 그 2배인 308명에 달했다. 문 대통령의 2018 남북정상회담 공식수행원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합참의장까지 7명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남북 합의하면 이행 기회 보장된 셈 과거엔 북·미 대립관계 풀리며 추진
이번엔 남쪽 적극 나서 정세 이끌어 평화정착 주요 의제 2007년과 유사
비핵화 합의가 테이블 오른 건 처음 핵개발 능력 초기 단계였던 북한
이젠 “핵무력 완성” 선언한 상황 평양 아닌 ‘분단 상징’ 판문점서 열려
북 정상, 한국전 뒤 남쪽 땅 처음 밟아 그렇지만 이번 정상회담에는 이전 정상회담의 발전적 계승의 측면도 있다. 우선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주요 의제들인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발전 문제는 큰 틀에서 2차 정상회담 때 다뤄진 주요 의제들과 다르지 않다. 2007년 정상회담 때 합의됐으나 이행되지 못한 △정전체제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공동어로수역·평화수역 지정 등은 이번 회담에서 다시 대화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추진했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공동 번영을 위한 경제협력사업 등도 이번 정상회담과 이후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와 연동해 추후 다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10·4 정상선언도 앞서 남북관계 발전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던 2000년 6·15 공동선언의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5개항의 ‘6·15 공동선언’에서는 “민족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통일의 원칙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북연합제’라는 각자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정하고,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경제·문화·사회 교류협력 활성화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 북한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 수준도 과거 정상회담 때와 차이가 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앞서 북한은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모두 가동하며 6차 핵실험까지 마쳤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기술만 확보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적어도 핵보유국으로서의 능력과 지위를 눈앞에 둔 상태다. 반면 2000년 정상회담 때는 북한이 플루토늄 추출 기술을 확보한 상태였다. 북한은 이미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면서 핵시설 7곳과 플루토늄 90g 보유 사실을 신고했다. 특별사찰 문제로 갈등을 빚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기로 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잔류와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 협정 이행을 약속했다. 대신, 미국은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북쪽에 경수로 및 중유를 제공하기로 했다. 2007년 정상회담 때도 북한의 핵개발 능력은 초기 단계에 머물렀다. 국방부 추산 티엔티 0.8~1㏏(킬로톤)의 폭발력을 기록했던 1차 핵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였다. 이때까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확인되지 않았다. ■ 판문점에서 열리는 첫 정상회담 앞선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이번이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점은 바로 회담 장소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은 평양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냉전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남쪽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진행된다. 한국전쟁 이후 북쪽 최고지도자가 남쪽에 발을 내딛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해 직항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경의선 육로로 방문한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72시간 다리’를 건너 노 전 대통령과는 반대 방향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장소가 판문점인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는 대대적인 환영행사 등 의전도 제한된다. 3군 의장대 사열도 축소된 형태로 진행된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내려 숙소인 백화원으로 가는 동안 수십만의 평양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7년 평양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대표단 규모도 과거 회담들과 차이가 크다. 2000년 회담 때는 각 부처 공식수행원 외에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 특별수행원까지 그 규모가 180여명, 2007년에는 그 2배인 308명에 달했다. 문 대통령의 2018 남북정상회담 공식수행원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합참의장까지 7명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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