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밤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 정상이 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이후,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외교 물살이 다시 빨라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하면서 5월부터 숨가쁘게 펼쳐질 정상외교 이어달리기를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 일본, 러시아 정상과의 통화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고, 이를 더욱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했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남북정상회담 성공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가급적 빨리 여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합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는 시 주석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방중 때문에 일정이 맞지 않아 추후에 진행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언제든지 일본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일본도 북한과 대화할 기회를 마련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문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하겠다”고 답했고, 문 대통령은 “북-일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기꺼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역할을 언급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 과거사 및 북-일 수교 등과 관련해 깊은 대화가 오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의 발빠른 행보에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정착에 필요한 주변국들의 신뢰와 지지를 다지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5월로 당겨질 경우, 남북정상회담으로 촉발된 비핵화 논의가 속도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으로선 그 전에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북-미 사이의 거리를 좁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다음달 도쿄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를 만난다. 2015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담을 재개하는 자리이지만,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리 총리에게도 남북 정상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설명하고, 지지를 당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이 정전협정의 한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종전선언,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얘기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기 직전이어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전략을 최종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운전과 길잡이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유강문 선임기자, 성연철 기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