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3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해 오울렛 초소에서 망원경으로 북쪽을 보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대표적이며(representative), 중요하고(important), 영속적인(lasting) 장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30일 트위터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판문점행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대통령들은 판문점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비난하고, 그에 맞서는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하곤 했다. 판문점은 미국이 북한을 향해 군사적 대결을 환기시키는 장소였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1993년 7월 방한 당시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지금까지 적잖은 미국 대통령들이 판문점을 방문했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시작으로 1993년 빌 클린턴, 2002년 조지 부시(아들), 그리고 2012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판문점을 찾았다.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에 참석하고선 관례처럼 판문점을 찾아 메시지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차 서울에 왔을 때,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하려 했으나, 기상악화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 불발은 회담의 숨은 하이라이트였다. 문 대통령의 제안으로 판문점행을 결심한 트럼트 대통령은 전용 헬기를 타고 가던 도중 짙은 안개에 부닥쳐 기수를 돌려야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승용차를 타고 판문점에 도착해 3시간 가까이 트럼프 대통령을 기다렸다. 소식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몇 차례나 헬기를 다시 돌리려 했으나, 안전을 우려한 실무진들의 만류로 결국 포기했다. 두 정상은 끝내 판문점에서 만나지 못했지만, 문 대통령의 기다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판문점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다음날 판문점을 방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은 새롭게 등장한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한미군 캠프 보니파스를 찾아가 “여러분은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에 있습니다. (자유와 번영의 측면에서) 남한과 북한만큼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군사분계선에서 25m 떨어진 최북단 초소를 시찰하고, 방탄유리 뒤에 서서 쌍안경으로 북쪽을 살폈다.
지난 2002년 2월 방한했을 때 전방 미군 관측소에서 북한쪽을 응시하고 있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AP연합
2002년엔 조지 부시(아들) 대통령이 판문점을 찾았다. 그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지 2주 만이었다. 판문점 비무장지대를 찾은 그는 세계를 향해 들으라는 듯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92년 비무장지대 관측소를 방문해 “우리 군대의 능력과 의지에 의문을 품는 자들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한마디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이라크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1993년 판문점을 방문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강경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지 4개월쯤 지나서 판문점을 찾는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그들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선 1976년 이른바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졌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까지 걸어갔다. 클린턴 대통령은 비무장지대를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불렀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판문점을 방문했다. 그는 방한 기간 중 기자회견을 열어 “필요하면 주한미군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선 판문점을 둘러봤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막기 위한 전쟁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을 찾아 최전선을 둘러보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행보였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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