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지난 5일 외교·국방·해양수산부 장관들과 함께 연평도를 방문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북방한계선을 남북 사이의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의 입장이 바뀔 수 있음을 내비쳤다.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 평화수역 설정과 관련해 ‘뇌관’으로 꼽히는 기준선 논란에 북한이 이전과 다른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표명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조 장관은 “남북 공동어로수역이든 평화수역이든 북방한계선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라며 “남북관계가 완전히 달라지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는 북방한계선을 손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합의한 내용”이라며 “다시 논의하기 전까지는 북방한계선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장관은 백령도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북방한계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북과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의 말을 종합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북방한계선을 새로 설정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겠으나, 그 전에 평화수역을 설정하는 과정에선 북방한계선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고, 이를 북한도 수용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리라 전망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반도 평화체제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평화협정을 맺는 과정에선 북방한계선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금까지 북방한계선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남북은 2007년 10·4 선언에서도 북방한계선 일대에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을 조성하는 데 합의했으나,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기준선으로 인정하지 않아 논쟁을 거듭한 바 있다. 남쪽은 당시 북방한계선 남북으로 등면적을 갖는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고 제안한 반면, 북쪽은 자신들이 설정한 ‘서해 경비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수역으로 지정하자고 맞섰다. 서해 경비계선은 북방한계선 남쪽을 달리다 연평도와 백령도 밑에서 튀어올라온다.
정부는 이번에도 북방한계선을 기준선으로 남북으로 등면적의 평화수역을 조성하자고 제안할 공산이 크다. 그러지 않으면 북방한계선을 양보했다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조 장관도 “10·4 선언 이후 (남북) 공동어로수역을 만드는 안이 있었는데 당시 제가 담당했다”며 “앞으로 협상할 때 과거 안을 참고하면서 바뀐 부분을 반영해 새롭게 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북방한계선 일대에 평화수역을 설정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이달 중 열릴 것으로 보이는 남북 군사당국 회담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한다는 공식적인 신호는 아직 없다. 판문점 선언 다음날 북한 관영매체들이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북방한계선’이란 선언의 문구를 그대로 인용한 데 주목하는 정도다. 10·4 선언과 이후 북방한계선 논란에 밝은 한 소식통은 “10·4 선언 이후 공동어로수역 기준선을 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막판에 등면적을 조정하면서 상당한 의견접근을 봤다”며 “북한이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새 전략노선을 채택하고, 미국과 비핵화를 협상하려 나선 상황에서 그 정도 사소한 차이로 논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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