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석방된 한국계 미국인 3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태운 공군 전용기가 9일 오전 평양국제비행장에 내려앉았다. 색안경을 쓰고 트랩을 내려온 폼페이오 장관을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리용호 외무상이 맞았다. 그로부터 12시간30여분이 지난 밤 8시40분께 전용기가 활주로를 박찼다.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3명이 새로운 승객으로 합류했다. 귀국길에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에 들른 폼페이오 장관은 “정말 긴 하루였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적이었다. 그가 북한을 방문한다는 소식은 전용기가 평양에 도착하기 1시간 전쯤에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미국인들이 풀려난 것도 전용기가 이륙하기 1시간 전쯤으로 전해졌다. 이상기류에 싸이는 듯했던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도 그의 평양행을 통해 확정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노동당 청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 위원장은 밝은 표정으로 통역 없이 인사말을 건넸다. 90분 동안 진행된 회동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구두 메시지를 들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 대해 높이 평가하고 사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한 영상을 10일 오후 공개했다. 사진은 작별 직전 폼페이오 장관과 악수하는 김 위원장. 연합뉴스
회동이 진행되는 동안 김 위원장 옆에는 김영철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폼페이오 장관 옆에는 중앙정보국(CIA) 산하 코리아미션센터의 앤드루 김 센터장이 앉았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을 공항에서 맞았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전부터 평양에 머물며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실무 업무를 진행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 센터장은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같은 서울고 출신이자 후배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앞서 김영철 부위원장과 두 차례 만났다. 폼페이오 장관은 “수십년 동안 우리는 적국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과의 회동에서 억류된 미국인들의 석방을 요청했다. 회동을 마치고 고려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폼페이오 장관은 “좋은 소식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손가락으로 ‘행운의 사인'을 보냈다. 잠시 뒤 북한 관계자들이 호텔로 찾아와 “김 위원장이 미국인 3명을 특별사면했다”고 전했다. 북한 관계자들은 “힘든 결정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부드러운 경고'를 남겼다. 오후 7시45분 칼 리시 미 국무부 영사국장과 미국인 의사가 평양의 한 호텔로 가 미국인들을 데리고 나왔다. 이어 오후 8시42분, 이들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영공을 벗어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두 건강합니다.”
유강문 선임기자,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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