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대화하다 밝게 웃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한-미 정상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3국이 함께 종전을 선언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로부터의 체제 안전보장과 평화협정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로 이어지는 남북간 현재 상태의 종식을 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23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남북이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합의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도 의제로 올랐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비핵화와 함께 판문점 선언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의 두 차례 방북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화협정 체결 의지를 확인하고, 이를 비핵화에 상응하는 체제 안전보장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미 3국의 종전선언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은 일단 우호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트 대통령도 종전선언에 부정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어떤 결론을 낸 것은 아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의미엔 동의하면서도 실행에 대해선 여지를 둔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성과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태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 직후 남북의 종전선언 구상을 적극 환영한 바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전쟁이 끝날 것! 국인들은 한반도 상황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문구는 특별히 대문자로 적었다.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을 두 차례 만난 폼페이오 장관은 23일(현지시각) 하원 청문회에서 “김 위원장이 세계로부터의 체제 안전보장과 평화협정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로 이어지는 남북간 현재 상태의 종식을 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몇 주 후 그런 부분을 더 구체화할 기회를 얻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함께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깊게 다뤄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미국은 앞서 북한과의 합의를 조약 형태로 맺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두 번째 방북 때 동행한 브라이언 훅 국무부 선임 정책기획관은 <피비에스>(PBS)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이 비핵화할 용의가 있다면, 미국은 북한을 위한 광범위한 혜택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북한과의 조약 체결에 매우 열려 있다”고 말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안전을 의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한 조약 형태로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 청산과 관련한 합의도 조약 형태로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미 정상이 종전선언의 주체로 남·북·미 3국을 특정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청와대는 앞서 남·북·미 3국이 종전선언을 하되, 중국이 참여를 원하면 반대하진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중국의 참여를 필수조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미국도 이를 받아들였음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 뒤에 시진핑 중국 주석이 있다며, 북-중 밀착에 견제구를 날리는 상황이 반영된 듯하다. 순서로 보면, 이미 남북은 종전선언에 합의했고, 이번에 한-미가 논의를 했으니, 이제 북-미가 합의하는 일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11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파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종전선언은 1953년부터 65년 간 지속해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에 앞서 정전상태를 정치적으로 종결하는 행위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역이자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체제 안전보장을 과도적으로 담보하는 조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가 만나는 종착역까지 도달하기 위한 시동을 거는 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종전선언은 비핵화로 가는 과도기에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것이다. 한-미 정상이 이를 진전시켰다는 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완료하면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등 항구적인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남·북·미 3국 정전선언이 중국을 배제하는 논리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중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마땅한 역할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중국이 동의하지 않는 남·북·미 3국 종전선언을 추진할 경우 한-중 관계가 불편해지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 칼럼에서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한·미와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참여를 오히려 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쟁의 상대방이었던 한·미와 이미 수교까지 한 중국이 한반도의 과도기적 관리에 관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종전선언의 실행 여부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 안전보장을 담은 포괄적 합의가 도출되느냐에 달려 있다. 북-미가 이에 성공하면 남·북·미 3국의 정상 또는 외교장관이 만나 종전선언을 하는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일각에선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정상들이 만나는 극적인 방안을 거론하고 있으나, 청와대는 일단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 당국자들은 종전선언을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27일에 맞추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지는 평화체제 구축이 비핵화를 추동하면서 서로를 밀어가는 ‘두 개의 바퀴’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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