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외교

‘화염과 분노’에서 ‘싱가포르의 좋은 일’까지

등록 2018-06-11 08:40수정 2018-06-11 22:19

북-미 한동안 험악한 ‘말의 전쟁’
유엔총회 기간 서로 인신공격까지
평창올림픽 거치며 대결서 대화로
북-미 협상서 리비아 모델 격돌
트럼프 회담 취소에서 재개로 반전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북한이 위협을 계속하면 지금까지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지난해 8월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폭탄이 튀어나왔다.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기 소유의 골프장에서였다. 여름휴가차 이곳을 찾은 그는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노려보면서 북한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연상시키는 경고를 내뱉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겨냥해서는 “아주 위협적이며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났다”고 몰아세웠다.

곧바로 북한이 반격에 나섰다.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전략군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장거리 전략탄도 로켓 ‘화성-12형’으로 괌도 주변에 대한 포위사격을 단행하기 위한 작전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도 별도 성명을 내어 “미국의 선제타격 기도가 드러나는 즉시 서울을 포함한 야전군 지역의 모든 대상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위협했다.

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북한과 미국은 전례없는 ‘말의 전쟁’을 치렀다. 미국이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면서 군사적 선택을 내비치면, 북한은 미국도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한 이후에는 달력을 넘길 때마다 한층 험악한 전쟁위기설이 한반도를 휘감았다. 공방이 거칠어지면서 북한에 대한 제한적 공격을 뜻하는 ‘코피작전’이나 김 위원장에 대한 ‘참수작전’을 들먹이는 목소리까지 불거졌다.

9월 유엔총회는 전쟁위기설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며 “미국이나 동맹을 수호해야 할 임무가 생긴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북한을 겨냥한 그의 발언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수사였다. 김 위원장은 직접 성명을 내어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을 다짐했다. 미국은 유엔총회 기간 `죽음의 백조’라고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를 북한 동해로 출격시켰다.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북한 동해까지 접근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었다. 북한은 전략폭격기를 격추하겠다고 받아쳤다. 북한과 미국의 공방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됐다. 김 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핵단추가 내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단추를 갖고 있다”고 응수했다.

상황을 반전시킨 건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낸 남북관계의 진전이었다.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며 남북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호응하면서 남북은 1월9일 판문점에서 얼굴을 맞댔다.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기간에 대표단과 함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특사로 내려보냈다. 문 대통령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을 올려보냈다. 남쪽 특사단이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대결에서 대화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북-미 정상회담 논의는 3월8일 백악관을 찾은 정 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전하면서 급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를 수락하고 김 위원장을 “5월까지 만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부활절 주말 극비리에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9일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며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회담 일정은 한동안 확정되지 않았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일괄타결을 강조하면서 북한과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이견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돌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3월25~27일에 이어 5월7~8일 중국을 방문해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해법을 거듭 확인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곧바로 평양으로 날아갔다.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3명과 함께 의기양양하게 귀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서야 북-미 정상회담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연다고 발표했다.

리비아 모델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은 완강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5월16일 담화를 통해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는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북한은 같은 날 판문점에서 열기로 한 남북 고위급회담도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을 이유로 중지한다고 통보했다. 5월23일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담화를 내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며 정상회담 재검토를 들먹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24일 전격적으로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그는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최근 담화문에서 드러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볼 때, 나는 이번에는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바뀌면 주저하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달라”고 끝을 맺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수락한지 77일 만의 대반전이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또다른 대반전이 이어졌다. 김계관 부상은 다음날 '위임에 따라'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따뜻한 뉴스’라고 화답했다. 26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판문점 2차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북-미 정상회담은 다시 궤도에 올랐다.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북-미 협의가 재개됐다.

“우리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날 것이다.” 6월1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를 재확인했다. 백악관을 찾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은 뒤였다. 카메라 앞에 선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선 10개월 전 ‘화염과 분노’와는 사뭇 다른 말이 쏟아졌다.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최대의 압박’이란 말은 더는 쓰고 싶지 않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