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9·9절) 기념 열병식에서 인민군 탱크부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날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등장하지 않았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평양/AP 연합뉴스
북한이 정권 수립 70주년을 기념하는 9·9절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미국을 위협할 의사가 없음을 행동으로 재확인한 저강도 행사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가 건네졌다고 밝혔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 방북 이후 새롭게 조성된 북-미 협상 국면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이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9·9절 열병식에서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전략무기를 전혀 선보이지 않았다고 <교도통신> 등 외신들이 일제히 전했다. 비핵화 초기 조처와 종전선언을 둘러싼 북-미 교착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협상에 밝은 한 외교관은 “북한의 태도는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사일 시험발사를 동결하고, 미사일 엔진실험장을 폐쇄한 조처의 연장선에 있다”며 “협상을 통해 상황을 타개하려는 북한의 의지가 굳건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북한의 협상 재개 의지는 9·9절의 의미를 짚은 <노동신문> 사설에서도 읽힌다. 신문은 이날 2면에 실린 ‘위대한 인민의 나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 공화국 70년 역사의 빛나는 승리는 인민의 자주적 삶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영원히 담보하는 세계 최강의 정치군사적 힘을 다져놓은 것”이라며 “평화번영의 만년 보검을 틀어쥔 우리 조국이 경제강국으로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핵이나 미사일 능력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면서 경제강국이란 목표 달성을 강조한 게 주목된다. 잇따른 핵실험으로 촉발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를 풀어내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냄으로써 ‘북-미 간 친서 외교’에 재시동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각)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의 편지가 어제 국경에서 건네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친서에 대해 “긍정적인 편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의 친서는 지난달 24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취소되는 등 북-미 간 비핵화·종전선언 협상이 난관에 빠진 상황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 특사단에게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라는 시간표를 제시한 직후 전달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에 따라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재추진을 둘러싼 논의도 고개를 들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 일원이었던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9일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서 원장은 10일 오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예방해 방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특사단장이었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중국을 방문해 양제츠 중앙정치국원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했다. 특사단 방북 이후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대화의 물살이 빨라지고 있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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