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스티븐 비건(왼쪽)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새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났다. 문 대통령은 비건 특별대표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최근 특사단 방북으로 북-미 간 대화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는 기회를 잘 살려 비핵화 대화에서 성공적 결과를 거두어 줄 것”을 당부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특히 문 대통령은 비건 특별대표한테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등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비핵화 대화가 선순환 발전할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이 지속·긴밀히 협력해나가자”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와 관련한 한-미 협력을 직접 강조한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4·27 판문점 선언에 명기된 ‘당국자가 상주하는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는 14일 개소식을 치를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까지 공동연락사무소 개소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온 터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에 대한 한-미 간 완전히 목표 일치 △북-미 간 70년 적대관계 및 불신 극복을 위한 통 큰 대화 필요성 △비핵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가능한 모든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비핵화 대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비건 대표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했다.
이에 비건 특별대표는 “큰 중책을 맡아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며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고 답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이렇듯 문 대통령이 비건 특별대표를 직접 만난 데에는 처음 방한한 비건 대표에 대한 외교적 예우 측면도 있겠지만, 특사단 방북 이후 2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급부상하는 등 한반도 정세가 다시 중대 고빗길로 들어서는 상황에서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비건 특별대표와 비공개 협의를 벌인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 실장이 문 대통령의 특사단장으로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를 직접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비건 특별대표가 10일 방한한 뒤 만난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 가운데 특별사절단에 속한 이는 정 실장이 유일하다. 정 실장과 비건 특별대표의 비공개 협의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수밖에 없다.
비건 특별대표의 방한에는 마크 램버트 국무부 북한 담당 부차관보 대행과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국 담당 보좌관이 동행했다. 최고위급은 아니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핵심 당국자들이다. 이들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정 실장의 설명을 직접 듣고, 더구나 문 대통령의 의지를 직접 확인하는 건 한국의 정세 풀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비건 특별대표는 문 대통령을 예방하기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연쇄 회동했다. 특히 협의 상대인 이도훈 본부장과는 전날 만찬, 이날 조찬과 회담 등 하루 새 세차례나 연쇄 만남을 이어갔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 본부장과 회담 초반 취재진 앞에서 “우리는 꽤 어려운 일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만든 엄청난 기회도 있다”며 “이 기회의 순간을 최대한 활용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며 “이게 시작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12~15일 중국과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다시 방한해 추가 협의를 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특별대표의 한·중·일 순방 뒤 이례적인 재방한에 따른 한-미의 추가 협의 결과가 주목된다.
김지은 노지원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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