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 촬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 공동선언’에서 내놓은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은 북한의 추가적인 선제조처와 새로운 약속을 통해 미국의 상응조처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 정상의 합의라는 점에서 남북 공동의 비핵화 초기 로드맵이라 할 만하다.
북한의 추가적인 선제조처는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기를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선 지난 7월 발사대와 로켓엔진 시험대 일부가 해체된 정황이 민간위성에 포착됐으나, 이것이 실제 폐기를 위한 조처인지는 불확실했다. 외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폐기가 이뤄진다면, 북한이 지금까지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처의 진정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는 미국의 상응조처를 촉진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약속이다. 한층 적극적인 비핵화 조처를 제시함으로써 종전선언과 같은 미국의 상응조처가 이뤄질 수 있는 길을 넓힌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에게 미국의 상응조처가 있으면 더욱 적극적인 조처를 취한 의지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약속하면서 단계적 동보적 조처의 필요성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능력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 김 위원장의 영변 핵시설 폐기 약속은 북한이 이른바 ‘현재 핵’까지 폐기할 의사가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이제 북한이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일은 현재 보유한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문한 것과 맥이 통한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선언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고 있다. 미국의 상응조처에 따라선 북한의 ‘현재 핵’ 폐기가 핵물질, 핵무기와 같은 ‘과거 핵’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핵화 과정에서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부분과 북-미 간에 할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한 것 같다”며 “이른바 ‘과거 핵’은 북-미 간에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동선언에 담기지 않은 내용이 어쩌면 더욱 중요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이런 논의 결과를 토대로 내주 초 뉴욕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협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방안들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방북에 앞서 "이번 회담으로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을 상기하면, 남북정상회담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음을 시사한다. 비핵화 협상에 밝은 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앞서 미국의 상응조처를 끌어내기 위한 추가적인 조처를 거론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이 미국의 상응조처 의사를 확인하면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등의 선제적 조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동선언에 지금까지 북-미 간에 교착점으로 알려진 ‘종전선언과 핵 신고’라는 상응조처 교환이 언급되지 않은 것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지금 상황에서 핵 신고를 하기엔 북-미 간에 신뢰의 수준이 낮다고 본 듯하다. 신고를 해도 또다른 불신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폐쇄라는 추가적인 신뢰 구축을 통해 핵 신고로 나아가는 경로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합의했다. 향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남북 협력을 상수로 설정한 셈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논의를 토대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접점을 이끌어낸다면 연내 종전선언으로 이어지는 비핵화 협상의 물살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평양공동취재단, 유강문 선임기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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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평양 남북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