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 통일부 장관(가운데)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1일 “5·24 조치 해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이는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관계부처와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을 진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은 강 장관의 ‘불명확한 발언’으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남북협력을 확대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어려운 처지를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유지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상황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로선 대북제재의 완고함을 더욱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논란의 핵심이 된 5·24 조처는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응해 이명박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내린 대북제재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 중단을 비롯해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개성공단·금강산 제외한 방북 불허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대북지원 사업 보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의 행정조처인 만큼 언제라도 해제를 포함해 유연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다음해에 임가공 제품의 북한 반입을 허용하고, 종교인의 방북 신청도 받아줬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도 남북물류 협력과 민간단체의 비료 지원을 승인했다. 이 때문에 ‘남북교역 중단’과 ‘신규투자 불허’를 빼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도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채택한 군사합의서에 ‘쌍방은 북측 선박들의 해주직항로 이용과 제주해협 통과 문제 등을 남북군사공동위에서 협의하여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는 대목이 담기면서 해제를 앞두게 됐다.
그런데도 정부가 5·24 조처의 해제를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것은 남북교역 중단 및 신규투자 불허가 유엔 및 미국의 대북제재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막혀 있어 5·24 조처를 해제하더라도 실행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해제의 실익이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정부로선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북한의 조처가 없는 상황에서 5·24 조처를 해제할 경우 불거질 정치적 논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핵심은 한국의 독자적인 조처가 촘촘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망을 뚫기 힘들다는 데 있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대북제재 탓이 크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2008년 북한 초병의 박왕자씨 총격 사건에 따른 대응이어서, 5·24 조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북한에 대한 대량 현금(벌크 캐시) 지급과 금융거래 금지 등을 담은 유엔 제재와 관련이 많다. 조 장관은 “금강산 관광을 본격화하는 것은 유엔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사업을 재개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당시 박 대통령의 결정이 독단에 따른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 효력은 이제 북한과의 합작사업 신설 및 확대를 금지한 유엔 제재로 뒷받침되고 있다. 조 장관은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 “비핵화 진전에 맞춰야 하는 측면도 있어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과 비핵화가 선순환하는 과정을 희망하고 있다. 그만큼 대북제재 완화나 해제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문제는 명분을 따지기보다는 일이 되게 하는 시기와 방식을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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