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와 한 인터뷰에서 로라 비커 진행자에게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선물받은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소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에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물질의 폐기가 포함돼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12일 <비비시>(BBC) 인터뷰 발언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이 핵무기 폐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적 강조’로 보인다. ‘완전한 비핵화’(4·27 판문점선언) ‘핵무기 없는 한반도’(9·19 평양공동선언) 실현이라는 김 위원장의 약속이 실천명제라는 점을 국제사회를 향해 보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다가온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비핵화의 수준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김 위원장은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미국의 상응조처에 따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와 추가적인 조처를 취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미국의 상응조처에 따라선 추가적인 조처에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가 포함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핵시설에 이어 핵무기, 핵물질이라는 북한의 현존하는 핵능력이 모두 순차적으로 폐기 경로에 들어서는 셈이 된다.
문제는 미국의 상응조처가 무엇인가이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은 미국의 상응조처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 점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약속을 거론하며 “미국은 북한과의 오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것들은 서로 교환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상응조처가 종전선언에 더해 포괄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새로운 북-미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완전한 비핵화라는 싱가포르 선언의 정신에 따라 비핵화에 상응하는 외교, 군사, 경제적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상응조치라는 것이 반드시 제재를 완화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종전선언, 인도적 지원, 예술단의 교류,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거론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제재 완화 문제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화두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가 어느 정도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서서히 완화해 나가는 것까지도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해 나가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에 왔다고 판단되면 유엔 제재들이 완화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를 주장하는 미국의 태도에 비춰보면, 비핵화 과정에서 제재 완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처에 따른 단계적 제재 완화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유럽 등 국제사회에 환기하려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미국은 아직까지 제재 완화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함께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비핵화 단계에 따른 제재 완화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가시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미 협상과 남북관계에 정통한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중간선거를 치르고 있어 비핵화 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 비핵화가 진행되면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를 넘어선 동북아 질서를 언급한 대목도 눈에 띈다. 문 대통령은 “유럽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지금 유럽연합(EU)에 이르기까지 통합의 길을 걸어왔다”며 “앞으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이렇게 구축되려면 동북아 전체의 다자평화안보체제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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