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7일 네 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로(오른쪽) 미 국무부 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백화원영빈관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한 뒤 면담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현 단계에서 북한에 모든 핵·미사일 시설 목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일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북에 핵 물질 생산 중단과 관련 시설을 신고하도록 설득하고 상응조처로 종전선언+한-미 공동선언 또는 ‘다자 평화회의’를 제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계기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북한의 초기 비핵화 조처와 미국의 상응조처는 조만간 열리게 될 북-미 실무협상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될 지점들이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12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핵 무기·시설에 대한) 완전히 포괄적인 신고를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물질 생산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신고하고 중단하도록 제안하고, 이는 영변뿐 아니라 영변 밖 (핵 물질) 생산 시설을 포함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북한이 사찰단 방문 전까지 이들 시설의 위치를 신고토록 한다면 “매우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인혼 전 특보의 제안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런 조처가 당장 북한이 보유한 모든 핵·미사일의 규모와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도 이뤄질 수 있다고 짚은 점이다. 그는 “이는 북한이 아직 (신고)할 준비가 되지 않은 모든 핵무기와 미사일의 숫자와 위치를 드러내는 것과는 관련 없을 것”이라며 “다만 핵물질 생산 시설 신고에 대한 첫 단계는 그들이 할 준비가 된 조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전문가 가운데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과 발사대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과정에서 북한에 ‘위치’를 뺀 일차적 핵 목록 신고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도 비핵화 초기 조처로 “북한이 핵물질 생산과 관련된 시설의 완전한 목록을 제출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며 “이는 그들의 모든 핵 시설에 대한 목록을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핵물질 생산 시설, (즉) 영변 원자로, 영변 또는 북한의 다른 지역에 있는 고농축우라늄(HEU) 생산 시설 관련 완전한 목록을 확보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변에는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5MW 흑연감속로(원자로)와 지난 2010년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명예교수가 방문했던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 미국은 이밖에 ‘강선’ 등 북한에 공개되지 않은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이 취할 상응 조처와 관련해서 아인혼 전 특보는 ‘조건부’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그는 “상응조처로 종전선언은 가능하다”며 “한반도 평화 (구축) 이후에도 한-미 안보 동맹과 한반도 내 주한미군 주둔을 유지하는 내용의 한-미 공동성명을 병행할 것”을 제안했다.
자누지 대표는 “70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을 선언형식으로 끝내려고 하기보다는 미국, 한국, 북한과 중국이 종전의 방안을 둘러싸고 세부 내용을 마련하는 평화회의를 여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소리>는 자누지 대표가 북한이 원하는 또 하나의 상응조처인 제재완화에 관한 세부 내용도 실무 협상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제재완화는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와 일치하는 ‘구체적 행동에 대한 결과’로서 매우 신중하게 측정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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