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네바다주 엘코에서 중간선거 유세를 마치고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엘코/AP 연합뉴스
“장소와 시간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다.”(9월24일)→“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열릴 것이다.“(10월7일)→중간선거 이후에 열릴 것이다.”(10월9일)→“앞으로 두어달 안에 열릴 것이다.”(10월12일)→“내년 1월1일 이후가 될 것 같다.”(10월19일)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둘러싸고 미국발 ‘시간 끌기’ 신호가 강해지고 있다. 9·19 남북정상회담 이후 곧바로 열릴 것처럼 보였던 북-미 정상회담이 한달이 넘도록 시간과 장소를 잡지 못하더니, 급기야는 내년 1월로 넘어갈 것이라는 미국 고위 당국자의 언급까지 나왔다.
“중간선거 이후”로 일정을 제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제 공공연히 “서두르지 말라”고 주문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 강경파들이 회담 일정을 미루려는 상황을 추인하는 듯도 보인다. 북-미 관계에 밝은 한 전직 외교관은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본질적으로 비핵화 진전에 연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극”이라며 미국이 시간이라는 변수의 지렛대 효과를 활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우선 정상회담 의제 조율과 의전·경호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물리적으로 연내 개최가 빠듯한 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1~12월 동선을 맞춰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11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이고, 11월30일~12월1일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역시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라는 굵직한 일정을 고민중이다.
하지만 ‘내년 개최설’에는 미국이 ‘시간’이라는 지렛대를 들고 북한의 추가적 비핵화 조처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내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북한을 향해서는 진전된 비핵화 조처를 취하도록 압박하려는 수읽기로 보인다”며 “북-미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상회담이 내년으로 미뤄질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도 “미국 쪽의 대북 신호가 혼재된 상황”이라며 “비질런트 에이스 한-미 연합훈련 유예 등 대화 신호가 나오는 한편 ‘제재 유지’ 강조와 ‘시간 끌기’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강경파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의 셈법은 그만큼 북한과 미국의 수싸움이 복잡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북한은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상응 조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약속했다. 이어 중국, 러시아와 연대해 단계적인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의 표적이 종전선언에서 대북제재 해제로 옮아간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유럽 순방을 통해 북한의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단계에서 제재 완화를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제재 완화가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공론화한 것이지만, 미국은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시간이 길수록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은 이르면 다음주로 예상되는 고위급회담에서 윤곽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열흘 뒤 북한과의 고위급회담을 희망한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 19일 발언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미국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가에선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 조처 조율을 두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지만, 고위급회담이 열릴 경우 협상의 긍정적 흐름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유강문 박민희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