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선언 국무회의 비준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25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회의 동의 없는 평양선언 비준은 위헌이다.”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이므로 평양선언은 국회의 동의를 규정한 조약의 범위에 있지 않다.” “남북관계가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면 판문점선언은 왜 국회에 비준 동의를 요청했나?”
문재인 대통령이 9·19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를 국무회의에서 비준하자 불거진 ‘위헌 공방’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논쟁으로 비화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의 법리 공방이 남북관계의 기본 틀에 대한 해석을 따지는 상황으로 번진 것이죠.
남북의 주요 합의가 위헌론에 휩싸인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해 2000년 6·15 공동선언이나 2007년 10·4 선언 등은 모두 국회의 비준 동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위헌론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 합의가 모두 위헌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빠지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남북관계는 일반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남북관계의 이런 특수성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전문에 명시돼 있습니다. 당시 남북은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합의했습니다.
이 규정은 그보다 3개월 전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생긴 이중적 상황을 해소할 필요성에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서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유엔 동시 가입은 한반도에 두 나라가 존재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대한민국 헌법과 충돌할 뿐 아니라, 조선반도 전체를 영토로 선언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과도 배치됩니다.
통일되기 전 동·서독도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동·서독은 1973년 유엔에 동시 가입하기에 앞서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국제사회에서 대신하거나 대표할 수 없음에 동의한다”고 합의합니다. 역시 서로의 관계를 통일로 가는 잠정적 관계로 규정한 것이죠. 서독 야당이 이에 대해 동독을 승인한 게 아니냐며 위헌 소송을 냈지만 1973년 7월 합헌 판결을 받습니다. 사실 유엔 가입만으로는 가맹국들 사이에 국가 승인이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국제법의 통설입니다.
남북이 특수관계에 있지만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것은 우리 법체계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왜 판문점선언에 대해선 국회에 비준 동의를 요청했을까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006년 시행된 남북관계발전법의 “예산이 수반되는 기본계획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조처라고 설명합니다.
평양선언 비준을 놓고 위헌 공방이 요란해지면서,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진전시키려는 취지가 실종돼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이가 많습니다. 애초 청와대가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구한 데는 남북 합의에 대한 초당적 협력의 선례를 남겨,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관계가 흔들리는 것을 막자는 뜻이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 벽이 높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의 합의를 이행하려는 의지를 담은 평양선언 비준도 ‘법리 공방’ 속에 휘말렸습니다.
청와대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의 재확인에 불과합니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변화의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판문점선언 이행의 의미를 설득하고 야당의 지지를 구하는 게 필요합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5일 “법리 논쟁으로 지난 70여년의 남북관계가 재단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생산적인 논의를 주문한 것도 그런 반성으로 읽힙니다.
유강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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