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나 청와대 본관 내부를 소개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이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 나아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미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워킹그룹(실무단)을 만들기로 했다. 내달 출범할 한-미 워킹그룹은 외교부가 주축이 돼 관계부처 실무자가 참여하는 범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로서 남북 협력을 추동하기 위한 ‘제재 면제’ 논의도 활발히 할 전망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31일 기자들을 만나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한-미 워킹그룹 운영 구상을 밝혔다. 이도훈 한반도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양국 대표를 맡고,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를 주축으로 관계 부처 실무자들이 사안,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앞으로 남북 협력과 북한 비핵화 추진 과정이 본격화할 것에 대비해 한-미 사이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할 상시적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워킹그룹 출범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위 당국자는 “워킹그룹의 최대 목적은 어떻게 하면 한-미가 소통을 잘 하고 빈번하게 하느냐”라며 이 본부장과 비건 대표가 14차례 만나 진전시킨 협의를 “정례화, 공식화, 체계화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워킹그룹의 구체적인 역할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첫번째 축은 한-미가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전략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당국자가 “평화체제 구축의 입구에는 종전선언, 출구에는 평화협정 체결이 있다”고 말한데서 알 수 있듯 워킹그룹에서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과정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두번째 축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남북 협력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필요한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강화하는 역할이다. 이 당국자가 “우리 정부는 (남북협력 사업을) 제재 체재 아래서 끌고 나가고, 제재 면제를 요청할 필요가 있는지 협의한다”며 “워킹그룹에서 (이런 협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미가 긴밀히 협의를 한다는 전제 아래서는 남북 협력 사업에 부정적이지 않다고 전해진다.
미국이 최근 남북관계의 ‘과속’을 견제하기 위해 워킹그룹 구성을 제안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이 당국자는 “우리가 제안했고, 몇달 전부터 논의해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로버트 팔라디노 미 국무부 부대변인도 30일(현지시각)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28~30일 방한 내용을 전하며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노력의 한 부분으로, (한-미) 두 정부는 외교와 비핵화 노력, 제재 이행, 그리고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 협력에 대한 긴밀한 조율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워킹그룹을 만들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팔라디노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미 사이에 의견 불일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긴밀하게 조율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비건 대표는 전날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기 전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도 별도로 면담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밝혔다. 이 면담은 미국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 총괄실무를 담당하는 곳이 국정기획상황실이며, 윤 실장은 1차 정상회담을 위해 정의용 특사가 북한에 파견될 때 함께 방북해 북측 인사와 소통한 경험도 있고 판문각의 2차 남북정상회담에도 배석했다”며 “비건 대표가 윤 실장을 만나야 할 청와대 실무 책임자로 여긴 것 같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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