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미 국방부 ‘한국전 프로젝트’ 총괄 진주현 박사
“‘타라와’라고 아세요?” “….”.
유해 감식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던 그의 느닷없는 질문에, 다들 눈동자만 굴린다. 그가 빙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러실 거에요. 저도 거기 처음 가고 나서야 알았으니까요. 한국 분들이 오면 꼭 여기로 모시고 와서 타라와 얘기를 해요. 너무 안타까워서요.”
그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수색국’(DPAA·디피에이에이)에서 ‘한국전쟁 프로젝트’(Korea War Project)를 총괄하는 제니 진(한국이름 진주현) 박사다. 한국전쟁 프로젝트는 한국전쟁에서 죽거나 실종된 유해를 발굴해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의 공식 이름이다. 요즘 그는 7월27일 북한이 미국에 전한 55상자에 담긴 한국전 미군 실종자 유해를 감식해 신원을 확인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진행된 미군 유해 송환식에 참석해 북쪽이 건네준 상자 안에 동물뼈가 없는지 현장 감식도 했다. 북쪽이 미군 유해라며 전해준 상자에선 이전과 마찬가지로 동물뼈가 발견되지 않았다.
진 박사는 왜 10월23일(현지시각) 하와이 인도태평양사령부 기지 안에 있는 디피에이에이를 찾은 ‘한-미 안보포럼’ 한국 대표단한테 ‘타라와를 아세요’라고 물었을까?
타라와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로 지구온난화 탓에 서서히 바다에 잠기고 있는 키리바시공화국(인구 10만명)의 옛 수도다. 타라와는 몇개의 환초로 이뤄졌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베티오’(길이 3km, 폭 800m)에서 1943년 11월20~23일 섬에 상륙하려는 미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군 사이에 처절한 살육전이 펼쳐졌다. 72시간 동안 지속된 전투에서 미군은 해병 900명을 포함해 1696명, 일본 쪽은 4690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평양전쟁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 최초의 상륙전투를 전쟁사는 ‘타라와전투’라 부른다.
진 박사는 타라와에 묻힌 미군 유해를 발굴·감식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한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서 성과가 있어요. 일본도 비정부기구가 태평양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유해를 발굴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미-일의 일만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일본군의 저항을 제압하고 섬에 상륙한 미군이 145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128명이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였다. 일본군이 섬을 요새화하려고 끌고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가 1400명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니 포로로 붙잡힌 128명을 뺀 나머지 1200여명은 그 섬에서 일본군의 옥쇄 구호인 ‘반자이’(돌격)가 아니라 “어머니”를 목놓아 부르며 총알받이로 숨져간 셈이다.
한국전 미군유해감식 8년째 이끌어
7월 북 원산서 미군 유해 현장감식
“43년 남태평양 타라와서 처절한 전투
일본쪽 발굴 유골 중 조선인 가능성
한국은 지금껏 발굴한 적 없어” 뼈 분석해 신원 규명 ‘법의인류학자’ 진 박사의 말이 이어진다. “일본 사람들은 유해를 발굴하면 현장에서 화장을 해요. 후생성 규정상 시신을 본국에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해요. 문제는 그 사람들이 화장한 유골 가운데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골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거죠. 한국은 그곳에서 유골 발굴을 한 적이 없어요. 듣기론 외교부와 행정안전부에서 일본 쪽에 ‘발굴 유골을 현장에서 화장하지 마라’고 얘기했다는데….” 그는 지금 미국 시민권자다.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배웠고,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인류학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디피에이에이의 전신인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에 취직했고, 그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북한이 돌려보낸 한국전 미군 유해 감식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진 박사는 ‘법의인류학자’인데, 법의인류학은 “고고학·생물학·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뼈를 분석해 죽은 이의 나이, 키, 성별, 사망 시점과 원인 등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진 박사가 쓴 <뼈가 들려준 이야기> 등이 국내에 출간돼 있다.
그는 한국의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과 협력할 때가 많다. 10월1일 국군의 날에 미국이 이전에 북한과 공동 발굴한 한국전 유해 가운데 한국군으로 판명된 64구를 돌려보내는 일에도 진 박사의 ‘감식’이 있었다. 진 박사는 “유해 감식에서 저희와 한국이 가장 다른 점은 전사자 기록의 유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전사자 기록이 남아 있을 뿐더러 병력 등 내용도 상세한데, 한국은 기록 자체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란다. 이런 기반의 차이는 유해 감식에서 유품이 차지하는 비중에도 큰 영향을 준다. “저희는 감식에서 유품의 비중이 낮아요. 디엔에이 또는 동위원소 분석, 흉부 엑스레이 사진 등을 활용해 생물학적 증거가 확보돼야 신원이 확인된 것으로 판단해요. 반면에 한국은 유품의 비중이 높아요. 그래서인지 한국 전문가들은 오랜 세월 탓에 삭은 군복으로도 국군·인민군·중국군 여부를 잘 구분하시더라고요. 신기할 정도로요.”
일정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진 박사가 작별인사를 하며 외치듯 당부했다. “한국에 돌아가시면 타라와 얘기 좀 많이 알려주세요. 강제로 끌려왔다가 거기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서요.”
하와이/글·사진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수색국’(DPAA)에서 ‘한국전쟁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제니 진(한국 이름 진주현) 박사가 10월23일(현지시각) 유해 감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쪽 벽에 걸린 포스터 속의 인물사진은 진 박사팀의 발굴과 감식을 거쳐 신원이 확인된, 타라와전투 때 목숨을 잃은 미군들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7월 북 원산서 미군 유해 현장감식
“43년 남태평양 타라와서 처절한 전투
일본쪽 발굴 유골 중 조선인 가능성
한국은 지금껏 발굴한 적 없어” 뼈 분석해 신원 규명 ‘법의인류학자’ 진 박사의 말이 이어진다. “일본 사람들은 유해를 발굴하면 현장에서 화장을 해요. 후생성 규정상 시신을 본국에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해요. 문제는 그 사람들이 화장한 유골 가운데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의 유골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거죠. 한국은 그곳에서 유골 발굴을 한 적이 없어요. 듣기론 외교부와 행정안전부에서 일본 쪽에 ‘발굴 유골을 현장에서 화장하지 마라’고 얘기했다는데….” 그는 지금 미국 시민권자다.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배웠고,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인류학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디피에이에이의 전신인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에 취직했고, 그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북한이 돌려보낸 한국전 미군 유해 감식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진 박사는 ‘법의인류학자’인데, 법의인류학은 “고고학·생물학·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뼈를 분석해 죽은 이의 나이, 키, 성별, 사망 시점과 원인 등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진 박사가 쓴 <뼈가 들려준 이야기> 등이 국내에 출간돼 있다.
제니 진(한국이름 진주현) 박사가 여러 종류의 뼈를 들어보이며 유해 감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