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30일 오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온 친서를 공개했다. 청와대는 친서의 직접 공개는 정상 외교에서는 친서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며, 표지와 일부 내용만 공개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 올해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평가와 서울 답방에 대한 입장, 새해 한반도 평화 및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대한 바람을 담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신년사 발표를 앞두고 전례없는 ‘깜짝 친서’를 보낸데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합의 실천 의지를 재천명하는 등 긍정적 메시지를 던져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남북관계, 특히 ‘9·19 남북 군사합의’ 이행으로 현실화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처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구체적으로는 남북 정상이 올해 세차례나 만나 일군 성과로 “민족이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 더는 돌려세울 수 없는 화해와 신뢰의 관계”를 강조했다.
친서는 또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과 관련한 논란에 매듭을 지었다. 김 위원장은 연내 서울 방문이 이뤄지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함께 “앞으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는 게 김 대변인의 설명이다.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2차 북-미 정상회담 또는 북-미 관계 진전과 연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친서는 “2019년에도 문 대통령과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하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할 용의” 및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다시 밝혔다.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을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제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의 참가자들을 만나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세밑 친서라는 획기적 방식을 선택한 데는 북·미가 소강국면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올해 일군 남북,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새해에도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기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친서는) 최고지도자들 사이의 신뢰는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지금 북-미 간 협상이 다소 정체에 빠지면서 남북관계도 영향을 받아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종전선언이나 평양 회담에서 얘기된 서울 답방이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 흐름은 유지할 것이며 (이행) 의지는 확고하다고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시에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역할을 요구함으로써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 관계를 움직이겠다는 이른바 ‘통남통미’ 또는 ‘통남봉미’를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남쪽을 통로로 삼으면서 미국을 압박할 수 있기 문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통남통미라고 읽어줄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문 대통령이) 단순한 중재자를 넘어 ‘기획자로서의 중재자’ 역할을 요구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미 협상에 밝은 외교 소식통도 “좋은 쪽으로 보면 비핵화를 지속하겠다는 뜻도 있다고 볼 수 있고, 나쁘게 보면 미국을 무시하는 전략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북한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신년사 발표를 이틀 앞둔 시점에 보낸 이번 친서가 신년사에 담길 대남 메시지의 예고편이라고 본다. 신년사의 대미 메시지는 좀 더 봐야 하겠지만, 청와대 쪽에서는 내년 1~2월에 북-미 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한겨레> 인터뷰에서 “(북-미 협상이) 조만간 활발한 국면으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지금의 북-미 교착을 풀려면 ‘의지 표명’ 이상의 조처가 필요하다. 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북·미 어느 쪽이든 비핵화-상응조처와 관련해 상대를 움직일 만한 조처를 내놓는 결단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