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정부게스트하우스(영빈관) 인근 도로에서 관계자들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중국, 베트남, 리비아 등 과거 적대국들과 관계 정상화를 앞두고 연락사무소나 이익대표부를 설치해왔다. 연락사무소는 관계 정상화의 ‘입구’였던 셈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연락사무소의 설치와 역할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두 나라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협약을 맺고 개설하는 대사관과 달리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는 명확히 규정된 기능과 역할이 없다. 합의에 따라 ‘사실상의 대사관’ 기능을 하기도 하고, 초보적인 ‘소통 창구’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는 이익대표부(interest section)도 마찬가지인데, 공통점은 미수교국들 사이에 두는 ‘상설 외교대표부’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업적’으로 꼽는 미국과 쿠바의 54년 만의 관계 정상화 과정에도 이익대표부가 존재했다. 1959년 쿠바혁명 이태가 지난 1961년 단교한 뒤 미국의 대리대표는 16년 동안 쿠바 주재 스위스대사관이 맡았다. 그러나 미사일 위기를 겪고 최소한의 외교 채널 유지 필요성을 느낀 양국은 1977년 워싱턴과 아바나에 상호 이익대표부를 설치했고 이후 40년 가까이 이를 운영했다. 미국 이익대표부는 스위스대사관의 보호 아래, 쿠바 이익대표부는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설치됐다.
미국과 중국도 1979년 국교 수립 6년 전인 1973년 각각 워싱턴과 베이징에 연락사무소를 열었다.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꼭 1년 만인 1973년 2월 양국은 상대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는 내용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당시 미 국무부 쪽이 연락사무소와 대사관의 차이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는 해프닝도 전해진다. 양국이 정식 수교관계 수립에 합의한 1978년까지 연락사무소는 양국 관계 전반을 다루는 실질적인 외교채널 구실을 했다. 북한 외교관들이 베이징의 미국 연락사무소에 방문해 미국 쪽과 접촉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미국과 베트남의 경우 워싱턴과 하노이에 연락사무소를 둔 기간이 6개월에 불과했다. 양국이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던 1995년의 일이다. 다만 그에 앞서 양국 수교의 발판이 된 베트남전 미군 전쟁포로 및 실종자 문제 해결과 유해발굴 사업을 위해 미국은 1991년부터 하노이에 사무실을 운영했다. 베트남은 따로 미국에 ‘사무실’을 개설하지 않았지만 1991년 미국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근무하는 베트남 외교관들의 여행 규제를 풀었다.
미국과 핵협상을 거쳐 수교한 리비아도 비핵화 과정에서 상응조처로 수도 트리폴리에 미국의 연락사무소가 설치된 바 있다. 리비아가 2003년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하면서 미국은 2004년 2월 이익대표부를 연 뒤 넉달 만에 이를 연락사무소로 격상했다. 이 연락사무소는 리비아 비핵화 조처가 마무리된 2006년 5월 대사관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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