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고위급 안보 협의를 마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지난 8일 생일을 맞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9일 북한 쪽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북-미 협상이 멈춰 서고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36번째 생일을 계기로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고위급 안보협의에 참석하고 10일 오후 귀국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과 잠시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며 “마침 어제 만난 날(미국시각 8일)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생일이었는데 그걸 트럼프 대통령이 기억하고 김 위원장 생일에 대해 덕담을 하며 메시지를 문재인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에게 꼭 좀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제가 알기론 아마 어제 적절한 방법으로 북측에 그런 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청
와대 관계자도 메시지 전달을 확인하면서, “어떤 내용이고 어떤 경로로 전달했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만남은 정 실장이 한·미·일 고위급 안보협의를 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깜짝 만남’을 요청해 이뤄졌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쪽과 한반도 정세에 관해 긴밀한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매우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며 “한반도 정세뿐 아니라 다른 지역 정세에 대해서도 미국 측으로부터 상세한 브리핑을 받았고, 특히 우리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해결,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 정착과 관련해서는 미국 측과 또 한·미·일 3국 간에도 매우 긴밀한 협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번 메시지 전달은 우선 당분간
이란 사태에 집중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갈등이 악화돼 ‘두개의 전선’에 직면하는 부담을 방지하려는 관리 차원으로 볼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과의 협상을 중요한 외교 업적으로 생각하고 북한의 반응을 보아가며 상황을 진전시킬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유화적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 완화에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전략무기를 언급하고 자력갱생과 전면돌파전을 선언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상의 문은 열어둔 것에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했고, ‘생일 메시지’에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더라도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존중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읽어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진전 의사를 밝힌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전달하도록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며 적극적인 남북 협력 사업 추진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간 남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상황 진단에 기초해 북-미 협상이 당장 진전되지 않더라도
남북이 최소한의 협력 공간은 만들어나가자는 의지가 담겨 있는데, 이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관건인 상황이다.
정 실장은 남북 협력과 관련한 대북제재 완화 등에 대해 미국과 논의했는지를 두고선 말을 아꼈다. ‘문 대통령이 말한 남북 협력 방안 메시지를 미국 쪽에 전달한 게 있는가’라는 물음에 “나중에 차차 더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희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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