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서 코로나19 확산의 중국 책임론을 공세적으로 제기하는가 하면,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 움직임에는 홍콩의 특별지위 철회로 대응하는 등 대중국 포위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부당한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적극 대응 의사를 밝히고 있다. 미·중 사이에 낀 우리 정부의 처지가 곤혹스럽다.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넘어설 제3의 대안이 한국 외교에 있는가? <한겨레>는 국내 전문가와 미국·중국 쪽 전문가의 고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위성락 전 러시아대사(왼쪽)와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1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미-중 갈등을 진단하는 대담을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국이 미-중 대결 구도에 낀 샌드위치가 됐다는 우려가 크다. 이런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한국의 선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위성락 전 러시아대사와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을 한자리에 모셔 고견을 들었다. 위 전 대사는 대표적 북미·북핵 전문가이자 러시아통이다. 러시아대사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전문위원으로 있다. 김 원장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큰 그림을 그려온 국제정치학자다. 그는 2017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신남방정책 등 정부의 핵심 외교정책의 틀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미-중 대결의 틈바구니를 헤쳐나가기 위해선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그동안의 외교 관성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분명한 원칙을 세워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위 전 대사는 “기본적인 좌표를 정하고 축적된 사례를 만들어 외교적으로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김 원장도 “미·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무역, 항해의 자유, 아시아의 비핵화 등 원칙을 정하고 선제적이고 지속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담은 1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렸다. 사회는 박병수 통일외교팀장이 맡았다.
격화되는 미-중 갈등
사회(박병수 통일외교팀장) 미-중 갈등의 배경부터 얘기해보자. 올해 초 1단계 무역합의로 한숨 돌린 듯했으나, 최근 코로나19 책임론,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을 놓고 관계가 극도로 악화했는데.
위성락(이하 위) 긴 흐름으로 보면 미-중 대립은 오래됐고 중국이 부상하면 이렇게 될 것이라는 점은 예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좀 더 첨예해진 것이다. 수십년간의 지속적인 흐름이다.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비슷할 것이다. 미국에 근래 2~3개 행정부가 인도·태평양전략 등 이름만 다르지 미국 사회 안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봐야 한다.
김준형(이하 김) 미국의 대외정책이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 만큼, 대중 견제 등은 예측이 가능한 사안이었다. 2000년 초반 9·11 테러 등으로 중국이 너무 커지기 전에 제압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미국 내부의 분위기다.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거세진 것이지, 미-중 갈등은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다. 글로벌 영역, 즉 무역, 환율, 기술 등에서 중국이 무역 이외는 아직 미국에 뒤처졌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동중국해-대만-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중국은 치고 나가려고 할 것이고, 미국은 봉쇄하려는 패권이 계속될 것이다.
위 사실 코로나19 책임론은 미국 안에서도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반면 홍콩 보안법 문제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공감할 수 있어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싸움을 걸기보다 가만히 힘으로 미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경우도 많다. 김 원장의 말대로, 중국은 미국이 주변을 찌르고 들어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고, 자기 세력권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중국의 그 세력권 속에서 한반도는 아주 중요한 자리라는 점이고,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선택을 강요받는 한국
사회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했다. 미국은 또 중국 배제 성격의 경제연합체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모두 중국을 겨냥한 포석의 의미가 있는데.
위 G7 참여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다만 G7이 확대되고, 그 안에 한국이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 가입을 놓고도 논란이 될 것이다. G7이 확대되면 G20과의 관계 설정도 논란이 된다. 그래서 G7 확대는 복잡한 문제로 보인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G7 확대를 언급한 것 같다는 점이다.
김 G7 참여는 맞다고 생각한다. 중국을 고립시키는 것에 우리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미국의 중국 배제에 불만을 품고 이번 G7에 안 가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G7을 늘리는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치밀한 계획이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에서 G20의 역할이 컸는데, ‘반중국 전선’ 아래 경제 극복 등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든다.
위 경제번영네트워크(EPN)는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는 것 같다. 단단한 결속을 의미하는 ‘블록’ 등과 차별화하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점이 있는지 검토해 보고, 사안별로 협력하는 자세를 취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김 경제번영네트워크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치밀한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입장에선 중국을 굳이 언급하지 않으면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 자유무역을 지향한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말하며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현 국면에선 하반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도 미-중 갈등 구도의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는데.
위 시 주석 방한은 코로나19 이후 중국이 더 적극적인 태도로 바뀐 것 같다. 올 초만 해도 중국의 태도엔 미적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일본 방문과 한 묶음으로 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별도 일정으로 방한하려는 기류가 있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 이후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한국을 자기편으로 묶어두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우리 입장에선 거꾸로 올 초만 해도 시 주석 방한을 적극 추진했지만 지금은 조금 부담스러운 국면이 됐다.
우리 외교 전략은?
사회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데 한-일 관계도 좋지 않다.
위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중 갈등의 파고는 주변 나라와 함께 연대해서 넘는 게 좋다. 일본도 그 대상 중 하나다. 일본은 중국 견제 의식이 너무 강해서 너무 가까이하면 위험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도외시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이웃이다. 일본과 갈등이 격해지면 당장 G7 참여부터 쉽지 않다. 심각한 것은 한-일 관계 악화를 개선하려는 외교적 움직임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은 해결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외교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사법 판단이 내려져서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의 자산에 대한 현금화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이 문제 해결을 위한 위원회를 꾸리는 등 외교적 해법 모색에 나서야 한다.
김 일본의 태도가 지나치게 완고하다.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끝났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수출규제만 하더라도 조정관을 만드는 등 일본이 요구하는 내용을 한국이 수용했지만 철회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한국이 굴복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일본이 바뀌어야 한다.
위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우리는 미·중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미뤄왔다. 국내외에 분란을 만들기 싫어서 모호한 태도를 하고 회피하기만 하는 건 ‘후진국형 외교’다. 이런 외교는 이제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의 기본적인 좌표와 원칙을 정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방식으로 미·중에 우리의 입장을 알려야 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제사회의 보편 원칙을 우리 외교의 명분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이런 원칙을 적용하고 그런 일관성이 축적된 사례들이 모여, 국제사회에 ‘한국은 이러저러한 보편 원칙을 표명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미·중 사이에서 덜 휘둘린다.
김 미·중 가운데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켜야 한다.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가 되기 전에, 예컨대 반중국 전선에 대해선 자유무역 원칙을 분명히 하고,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선 항해의 자유를, 미국의 한반도 중거리미사일 배치 요구에 대해선 아시아 비핵화, 한반도 비핵화를 내세우는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라와의 연대 전략도 중요하다. 미국과 동맹·준동맹 국가가 60여개국, 중국 무역이 1위인 곳이 110개국이다. 이 말은 사실상 전세계가 우리처럼 미·중 사이에 끼여 있는 처지란 의미다. 사안마다 이들과 어떻게 연대할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정리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