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남북협력 지지’ 메시지 내놨지만 한반도 정세 관리용 방문”

비건, 2박3일 방한 일정 마무리
전문가들 “남북관계 개선 추동 역부족” 평가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9일 청와대 귀빈접견실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남북협력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북한을 움직일 만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인해 최근 불안정해진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김준형 국립외교원장)

9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박3일 동안의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일본으로 출발했다. 비건 부장관은 이번 방한 계기에 “남북협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유화적 메시지를 냈지만 남북협력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아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거나 남북관계 개선을 추동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비건 부장관이 이번 방한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을 자제하는 한편 ‘남북협력’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시한 것을 평가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불안정한 정세 관리 차원의 방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비건 부장관이 8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 가운데 한국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남북협력사업이나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제재 완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실제 이행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 때 북-미든, 남북이든 만날 수 있다”며 “비건 부장관은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11월 미국 대선 전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 역시 현재로선 낮은 상황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섣불리 협상을 이어가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도 대선 전에 북한에 제재 완화 등 양보를 하기보다는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북한의 도발을 막으며 현상 유지를 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재선 여부가 확실해지기 전까지 북한은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다시 ‘톱-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겠지만 (판세가) 민주당 쪽으로 기울면 큰 도발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비건 부장관은 이번 방한에서 대미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옛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에 우회적으로 새 협상 상대를 임명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북한이 실제 대미 협상 책임자를 바꿀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할 수 있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밝힌 뒤면 모를까 아무런 이유 없이 대미 협상 책임자를 바꿀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비건 부장관은 방한 마지막 날 오전 청와대에서 서훈 신임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1시간10분 동안 면담했다. 두 사람은 북-미 대화 재개에 노력하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기 이천의 에스케이(SK) 하이닉스를 찾아 비건 대표와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지원 성연철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