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사진 아래 오른쪽 화면)이 9일 화상으로 열린 한-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하노이/EPA 연합뉴스
날로 갈등의 파고를 높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7~8월 ‘대격돌’ 후 아세안 외교무대에서 다시 한번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미 국무부는 9일(현지시각) 화상으로 진행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남중국해에서 중화인민공화국(PRC)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는 아세안 및 여러 국가들과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또 폼페이오 장관이 2016년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 판결에 따라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주장이 “불법”임을 되짚었다고 전했다.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미-중이 남중국해 문제를 싸고 신경전을 벌인 것은 매해 반복돼왔다. 그러나 올해 특히 눈길이 더 쏠린 것은 ‘홍콩 사태’와 관련해 미국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공산당을 향해 “이미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라며 막말에 가까운 험담을 쏟아낸 뒤 양자가 처음으로 함께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도 중국의 면전에서 △홍콩보안법 △민주화 요구 학생들에 대한 체포 △입법회 선거 연기 △민주화 후보의 피선거권 박탈 등을 구체적으로 꼬집으며 중국을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 발표를 보면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회의에서 “(동아시아정상회의는)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장소가 아니며 타국의 정치 제도를 공격하는 무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받아쳤다. 아울러 미국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남중국해 군사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미국이 간섭하고 대립을 부추겨 남중국해 평화의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고도 했다.
왕 부장은 전날 열린 중-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도 “미국은 지난 몇십년간 대중국 정책을 전면 부정하고 전력을 다해 중국을 주적으로 과장했다”며 “중국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중국 발전을 막으려 해 중-미 관계가 계속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화상으로 진행됐는데도 회의를 지켜본 쪽에서는 “양쪽 모두 자제함 없이 그야말로 설전을 벌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남중국해) 수역 내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 보장 및 대화를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강 장관은 또 회의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동아시아정상회의 외교장관회의에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 18개국이 참가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