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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수 잘못 짚은 윤 대통령…통일부에 ‘심리전’ 하라고?

등록 2023-04-07 16:00수정 2023-04-08 10:33

정치BAR_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북 통일전선부-남 통일부 하는 일 다른데
통일부에 대응심리전, 번지수 틀린 지시
‘우리 국민 대상 대응 심리전’ 해야 하는데
원래 심리전은 자국민 대상으로는 안 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 외교·통일·국방·보훈을 주제로 열린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통일부를 향해 “최근 수사 결과를 보면 국내 단체들이 북한의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들의 지시를 받아 간첩 행위를 한 것이 밝혀졌는데, 북한의 통일 업무를 하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 통일부도 국민들이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홍보라든지 대응 심리전 같은 것들을 잘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북한 통일전선부가 했으니 한국은 통일부가 대응하라는 건데, 두 기관에 같은 `통일’이란 단어가 있지만, 북쪽 통일전선부와 남쪽 통일부는 성격이 다르다.

소속부터 다르다. 북한 통일전선부는 노동당의 대남 사업기관이고 한국 통일부는 중앙정부 부처다.

하는 일도 다르다. 통일전선부는 대남전략전술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 조정·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남북회담, 경제협력, 해외교포·외국인 공작사업, 대남심리전 및 통일전선 공작사업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북한 통일전선부는 남북교류와 대남공작을 함께 하므로, 한국으로 치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을 합친 업무를 한다. 남쪽 국정원의 반대쪽 파트너는 북쪽 통일전선부다. 국가정보원과 통일전선부 사이 직통 전화를 국정원이 자리잡은 동네 이름을 따서 ‘내곡동 채널’이라고 불렀다.

통일부의 북쪽 카운트 파트너가 통일전선부인지 북한 국가기관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인지는 당국자, 전문가 의견이 갈린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라고 보는 쪽은 남북장관급 회담(고위급 회담)의 수석대표가 남쪽은 통일부 장관, 북쪽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인 점을 근거로 든다. 통일전선부라고 보는 쪽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북한 내 위상이 낮아서 장관이 책임자인 중앙부처인 통일부가 맞상대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8년 10월15일 남북고위급회담 남쪽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북쪽 단장(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오전 전체회의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8년 10월15일 남북고위급회담 남쪽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북쪽 단장(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오전 전체회의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 대통령은 “북한의 통일 업무를 하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 통일부…”라고 말했다. 북쪽 통일전선부가 통일 업무를 하니 같은 통일 업무를 하는 통일부가 대응심리전을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통일전선부는 ‘통일 업무’가 아니라 ‘통일전선 업무’를 하는 곳이다.

통일부와 통일전선부 명칭에 같이 들어있는 ‘통일’은 전혀 다른 뜻이다. 통일부의 영문 표기는 Ministry of Unification이고 통일전선부는 United Front Department of WPK이다. 남쪽의 `통일’(Unification)은 분단된 남북이 하나된다는 뜻이지만, 북쪽의 `통일전선’(United Front)은 `일정한 역사적 조건하에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정당·사회단체 또는 계급들이 동일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연합하는 전술’이란 뜻이다. 통일전선은 1919년 러시아 혁명가 레닌 주도로 결성된 국제공산주의 단체인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전략전술이다. 20세기 중국 공산당이 중국 국민당과 2차례 국공합작을 한 것도 통일전선의 일환이었다.

북쪽 통일전선부가 대남공작을 벌이는 것은 `통일전선’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대남 공작에 맞서는 심리전을 통일부에 지시했다. 통일부는 통일전선부와 달리 공작 업무를 하지 않는다. 통일부는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통일부는 “대응심리전을 준비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6일 통일부 관계자와 기자들의 문답이다.

― 윤 대통령이 통일부에서 대응 심리전 준비하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통일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는가.

“대통령님 말씀은 최근 간첩사건 같은 북한의 불순한 기도에 우리 국민이 넘어가지 않도록 통일부가 대응을 잘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국민들이 올바른 대북관을 갖도록 노력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할지는 북한 전반적 실상과 참혹한 인권상황 등에 관한 정보가 널리 알려짐으로써 우리 국민이 올바른 대북관을 가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 대응심리전 대상은 우리 국민이란 것인데, 북한 이해, 통일교육 등 그동안 통일부가 계속해온 게 있지 않으냐. 북한 실상을 알려주는 것이 북한 이해나 교육 같은데 대통령이 굳이 대응심리전이란 용어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안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취지로 이해한다.”

― 사전을 찾아보면 심리전이란 용어가 적군 등 상대 국민에게 심리적 압력을 가하는 건데 이번 대응심리전은 대상이 한국 국민이라 심리전이란 표현을 쓰기 어려운 거 아닌가.

“그만큼 사안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취지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윤 대통령 지시와 통일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하겠다는 것이다. 심리전은 군사작전의 한 형태다. 미국은 2차대전 때부터 적군과 상대 민간인을 심리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펴낸 ‘군사용어사전에’도 심리작전을 “국가정책의 효과적인 달성을 지원하기 위하여 아측이 아닌 기타 모든 국가 및 집단의 견해, 감정, 태도, 행동을 아측에 유리하게 유도하는 선전 및 기타 모든 활동의 계획적인 사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군사교리상 자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펴지 않는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7일 “통일부 대변인의 지난 6일 심리전 대상 관련 답변은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한다는 취지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한다”며 “대변인의 설명, 답변 취지는 북한의 불순한 심리전 기도에 대응해 통일부가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북한의 실상을 널리 알림으로써 올바른 대북관을 가질 수 있도록 대처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의 “북한의 통일 업무를 하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 통일부도 국민들이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홍보라든지 대응 심리전 같은 것들을 잘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시는 대응심리전을 수행할 주체, 심리전의 대상을 모두 잘못 짚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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