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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바위 뚫는 화살’을 찾아서

등록 2016-01-05 15:22수정 2016-01-05 15:24

정치BAR_다시 만난 박근혜-정의화 ‘고사’ 대결

대통령의 말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말과는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신문과 방송은 물론,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온 나라에 전해지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박 대통령의 말이 무게감을 잃고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공천을 받고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진실된 사람”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밀지 않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나 노동관련법 개정 등 여기저기에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1월4일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국가 주요기관장과 정·재계 인사들과 신년인사회를 열면서 “정신을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저렴한 어록’에 추가될 법한 저 말이 나온 맥락은 이렇습니다. 박 대통령은 “과거 우리는 전쟁의 폐허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함께 힘을 모아 세계가 놀란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정신을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옛 말씀이 있습니다”라고요. 이 무슨, 양궁 금메달리스트 뒤로 자빠질 소립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은평구 진흥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2014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양궁선수 기보배 등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은평구 진흥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2014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양궁선수 기보배 등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래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그 옛 말씀의 출처를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가장 근접한 표현인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어떤 일이라도 이루어지지 않겠는가’에서 출발했습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제8권 71번째 조목을 보니 그 표현 앞에 ’양기발처 금석역투(陽氣發處 金石亦透), 즉 ‘양기가 발하는 곳이면 쇠와 돌도 뚫린다’가 있더군요. 얼추 비슷하지요? 그런데 눈 밝은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여기에 화살은 없습니다.

이번엔 화살을 중심으로 뒤져보니, 비슷한 표현은 있습니다. <사기>에 나오는 중석몰촉(中石沒鏃), 중석몰시(中石沒矢)가 있는데, 전자는 ‘돌에 박힌 화살촉’이고 후자는 ‘쏜 화살이 돌에 박힌다’라는 뜻이랍니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요. 모두 정신을 집중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힘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지요. 그것도 화살이 바위에도 박힐 수 있다는 정도이지,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화실이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옛 말씀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제가 찾지 못한 ‘옛 말씀’의 출전, 출처를 찾아주신 분께는 막걸리를 쏘겠습니다”로 마무리하려는 순간, 결정적인 제보를 받았습니다. 황수영 더케이손해보험 사장이 1월3일 신년사를 통해 “정신을 집중하면 화살이 바위를 뚫는다는 일념통암(一念通巖)의 정신으로 임직원 모두가 한방향으로 매진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나가자”고 밝혔다는 <이데일리> 기사입니다. 아, 일념통암이라, 혹시 들어보신 분 있습니까? 또 사전을 뒤져보니 ‘정신을 집중하면 화살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하네요. 그 사자성어에 화살이 들어있지는 않지만요.

제가 과문한 탓인가 싶어, 일념통암이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인지 수소문을 해봤습니다. 대부분 어느 산의 암자인가 되물었습니다. 딱 한 사람이 이렇게 전해왔습니다. “제가 군생활 할 때 쫄따구 공익요원 녀석이 들어왔는데, 조직세계에 몸 담고 있다 잠시 훈련받으려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고참들이 거의 건드리지 않았던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이 왼쪽 팔뚝에 한자로 ‘일념통암’이라고 문신을 새겨 돌아댕겼습죠. ㅎㅎㅎ”

사실, 간만에 한문을 뒤적거리게 된 데는, 박 대통령이 인용한 옛 말씀의 출처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날 신년인사회 자리에서 박 대통령의 인사말과 정의화 국회의장의 건배사가, 초등생들의 베스트셀러인 <마법천자문>을 보는듯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불 화(火)’ 카드로 공격을 하면, ‘물 수(水)’나 ‘막을 방(防)’ 카드로 맞서는 것처럼 말이죠. 박 대통령이 ’관심법안’ 국회 통과를 강조하면서 “정치권의 개혁과 변화” “참된 정치” “비정상의 정상화” 등으로 압박하자, 정 의장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청정위천하정’(淸靜爲天下正)”, 다산 정약용의 ‘식위정수(食爲政首)’를 변형한 “화위정수(和爲政首)”라는 말로 맞섰습니다. 각각 ‘맑고 고요한 가운데 나라를 다스리면 그 나라가 올바르게 다스려질 수 있다’ , ‘화합이 정치의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박 대통령 면전에서 ’마법천자문’식의 점잖은 공격을 퍼부은 것이니 박 대통령은 불쾌했거나 뜨끔했겠지요. 아무튼,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의 신경전 덕분에 공부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저도 올 한해는 바위라도 뚫을 기세로 일념통암(一念通巖) 하겠습니다.^^

김보협 기자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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