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1일부터~12일까지 1박2일동안 안철수 의원의 지역 방문을 동행 취재했다. 광주와 순천, 김해 봉하마을을 거친 광폭 일정이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그의 두 가지 표정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어색한 미소, 다른 하나는 무표정이다.
1. ‘최~강철수’ 연호에 어색어색(11일 오후 4시, 순천 에코그라드호텔)
안철수 의원 지지모임 ‘내일포럼전남’이 주최한 초청 강연회였다. 순천은 안 의원의 처가로, 그와 호남의 직접적인 연결고리인 곳이기도 하다. 호응이 뜨거웠다. 안 의원이 접견실에 있을 동안 대연회실에 모여있던 지지자 1500여명은 연신 ‘안철수’를 외쳤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최~강철수(짜작작짝짝)!’도 외쳤다. 흡사 대선 후보 초청 행사를 연상케했다. 직전 행사였던 ‘광주 집단지성과의 대화’에선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여기선 외려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새 정치를 표방하는데, 구 정치와 다를 바 뭐 있느냐는 취지였다.
11일 오후 전남 순천시 에코그라드호텔에서 열린 안철수 무소속 의원 초청 강연회에서 지지자들이 안철수를 연호하고 있다. 순천/연합뉴스
순천 행사에서 압권은 안 의원을 무대로 ‘모시기’ 직전이었다. 사회자는 우렁찬 목소리로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실 분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이라고 물었다. 좌중은 박수를 치며 “안철수! 안철수! 안철수!”를 외쳤다. 안 의원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임내현 의원도 박수를 치며 “안철수! 안철수! 안철수!”를 읊조렸다. 안 의원의 표정을 살펴봤다. 그는 박수를 치지도, 웃지도 않았다. 손을 들어 호응하지도 않았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알 수 없는 미소만 띠었다.
유력한 대권 주자인 그는 창당을 준비중인 ‘국민의당’이 안철수 개인의 당으로만 비칠까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이 경우 세력 확장에 한계가 있고, 당장 김한길 의원 등 신당에 새로 합류한 인사들과의 주도권 문제도 있다. ‘사당화’ 논란을 인식한 듯, 그는 대선 관련 질문에는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이날 광주 행사에서 안 의원은 ‘대통령이 되면 호남 소외 문제를 어떻게 풀겠냐’는 질문에 “제 머릿속에는 대선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이번 총선을 어떻게 하면 잘 치를 것인가로 꽉 차 있다. 지금 대선을 생각해 움직이는 사람은 오히려 국민들이 금방 알아채고 총선에서 심판받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그러나 불과 2시간여 뒤 그는 열렬하게 ‘안철수 대통령’을 외치는 자리에 앉아있게 됐다. 그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마음껏 웃지도 못하고 호응할 수도 없는 어색한 자리였음은 분명하다.
2. 노무현 묘역 앞에선 말 아껴(12일 오전 10시40분, 봉하마을)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한 국민의당 안철수(중앙) 의원과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 등과 함께 12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사저 쪽으로 향하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안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후 10시11분부터 30분 동안 권양숙씨를 예방했다. 비공개 회동으로, 기자들은 동석하지 못했다. 한상진 창당준비위원장과 문병호·임내현 의원이 동행했다. 끝나고 나오는 안 의원에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한 위원장이 했다. 현 정부의 퇴행에 대한 우려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이후 질문에도 안 의원은 나서지 않았다. 앞서 참배 뒤 방명록을 작성할 때도 안 의원은 한 위원장이 적은 글귀 뒤에 ‘안철수’ 이름 세 글자만 보탰을 뿐이었다. ‘안 의원에게 묻겠다’고 한 기자가 콕 찍어 물었다. 친노 주류에 대한 비판을 해왔는데, 오늘 봉하마을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그는 “특정 세력을 비판한 적은 없다. 어떻게 하면 다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국민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어 정권 교체를 할 것인가에 대해 9월부터 계속 말해왔던 것뿐”이라고 답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임내현 의원이 입을 열었다. 임 의원은 “결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았다.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데 그 정신이 훼손되게 낡은 진보로 간 몇 분에 대해 비판적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임 의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엔 문병호 의원이 바톤을 넘겨받았다. 문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제 방에 걸려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앞장서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 뒤편에 있던 누군가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씀하십시오!”라고 외쳤다.
두 의원이 각자 얘기를 할 때 안 의원은 무표정이었다. ‘의원님들도 말씀을 하시라’고 제의하거나, 고개를 끄덕여 호응하는 건 없었다. 앞서 지난 8일 서울 마포 신당 창사에서 첫 회의를 공개적으로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동철·유성엽·임내현·황주홍·문병호 의원 등은 각자 얘기를 쏟아냈다. 임 의원은 이 자리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일부 급진 강경 세력이 문제이지 아주 좋은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무표정이었다.
현재 신당은 더민주 탈당 의원들의 무조건적 수용으로 ‘혁신’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호남의 탈당 의원들은 ‘구태’ 이미지로 신당과 맞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 광주 행사에서도 ‘새 정치를 말했는데 구정치인들을 향해 구애를 하는 듯한 모습이다’, ‘과거 한두 번 국회의원 했던 이들이 또 하려고 기웃거린다’는 등의 지적들이 나왔다. 세 확장을 위해선 현역 의원들이 필요하지만 호남의 탈당 의원들이 앞에 나서는 게 ‘전술상’ 플러스일지 마이너스일지 판단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들의 ‘자기 정치’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역시 안 의원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무표정 속에서 복잡한 마음은 엿볼 수 있었다.
문병호 의원은 자리를 뜬 뒤 같은 내용으로 트윗도 날렸다. 이후 종편에 전화 인터뷰도 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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