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을 출입할 때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판사들은 특정 언론사와만 밥을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점심 약속을 잡을 때 <한겨레> 법조팀과 먹을지, 아니면 타사 기자들과 ‘섞어’ 두루 볼지 물어보면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개인 차이도 있고 ‘팀약’(특정 회사 법조팀과의 밥 약속)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론 그랬다. 기자들과의 소통은 필요하지만, 특정 언론사와만 만났다는 소문은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직업보다도 공정함이 중시되다보니 몸에 배인 습관이려니 여겼다. 무슨 학회에 소속돼 있는지 널리 알려지는 것도 꺼려 했고, 어느 변호사가 방에 찾아왔는지 노출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워했다. 공정성은 판사를 옥죄는 굴레이자, 존재하게 하는 기반이라는 점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한 판사의 퇴임사를 다룬 기사는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광주지법에서 지난 8일 퇴임식을 가진 송기석 판사의 얘기다. 이제는 ‘전’ 판사다. 기사만으로는 전체 맥락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 그에게 전문을 보내달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법관으로 생활하면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사법 작용을 통한 우리 사회의 변혁에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이제 저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 등의 짐을 여러분에게 남기고, 정치라는 새로운 길을 걸으며 법관 생활 중 느꼈던 아쉬움을 채울까 합니다. 더불어 요즘 들어 우리 지역민들이 크게 느끼고 있는 실망감을 희망으로 바꿔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니 법원을 떠난다는 슬픔도 있지만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설렘에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퇴임사라기보다는 출마 선언문에 가까워보였다. 광주 쪽 지역법관(일명 향판)으로 근무했던 송 전 판사는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광주 출마가 유력해 보인다. 그는 광주가 될지, 고향인 전남 고흥이 될지 고민중이라고 했다. 또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양 쪽에서 영입 제의를 받고 있다고 했다. 송 전 판사가 실제 3개월 뒤 광주에 출마하게 된다면, 그간 판결은 예비 유권자를 대상으로 해온 게 된다. 판결문마다 봐야겠지만, 본다 하더라도 ‘공정했다, 안했다’ 단칼에 결론 내리기 쉽지 않겠지만, 그간 판결의 공정성을 의심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이에 대해 송 전 판사는 “법관직에 있으면서 법률가 양심에 따라 판단했다. 판결 내용들을 살펴보면 알 것이고, 또 당사자들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두고 판단을 했다 이런 느낌 얻을 그런 판단은 전혀 없었고 오해의 소지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말, 연초”인 최근 정치의 꿈을 확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법을 어기진 않았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출마할 공직자는 90일 전까지 물러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14일이 그 시한이었다. 그는 90일 하고도 6일 먼저 사퇴했다. 그러나 사람을 구금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형을 내릴 수도 있는 판사의 경우 공정성의 무게가 다른 공직자와는 다름을 법관들 스스로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법 작용에 한계가 있어” 정치를 하겠다는 선배의 퇴임사를 들으며, 후배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뭐, 퇴임하자마자 대형 로펌에 가서 ‘전관 예우’에만 몰두하는 경우보단 낫다고 넘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변호사법 조항도 최소 1년간은 퇴임 전 근무했던 법원, 검찰청 관할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지난 14일 영입이 발표된 박희승 전 수원지법 안양지원장도 ‘겨우’ 지난 12월 30일 퇴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에 영입된 법관 인사 중 가장 고위급”이라고 추켜세웠지만,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지점이 적잖다고 본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조금 결은 다르지만, 이 지점에서 안대희 전 대법관이 떠오른다. 모든 판사들의 꿈인 대법관을 지낸 그는 현재 새누리당 공천을 받는 과정에서 험지에 출마하네 마네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제의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는 다소 다른 행보다. 이 전 원장의 측근은 “법원 정서상 대법원장까지 한 사람이 정치권으로 간다는 것에는 법원의 반발 기류도 있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안 전 대법관이 국회의원이 돼서 좋은 법을 많이 만들고 민생을 챙긴다면 모든 시비를 일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활약을 빈다. 송 전 판사도 마찬가지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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