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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과 자찬…박근혜 정부 ‘홍보의 기술’

등록 2016-05-05 16:26수정 2016-05-05 17:10

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
박근혜대통령이 2월2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6년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대통령이 2월2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6년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산업팀을 거쳐 정치팀에서 취재하고 기사 쓰면서 몇 가지 포착한 게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술’들인데요. 주로 법을 밀어붙이거나 성과를 홍보할 때 구사하는 방법입니다. 종류별로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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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의로 포장한 네이밍

노동개혁법, 많이 들어보셨죠. 박근혜 대통령이 입이 아프도록 국회 통과를 촉구해온 법입니다. 사실 몇 가지를 묶은 것들인데요. 실제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②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③근로기준법 ④고용보험법 ⑤산업재해보상보험법입니다. 기간제법 개정안은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고, 파견법 개정안은 파견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를 묶어서 노동‘개혁’법이라고 홍보해왔죠. 처음에 누가 썼는지, 이 표현의 ‘저작권’이 어디있는지 확인하긴 어려운데 정부가 앞장서 사용하는 건 분명합니다. ‘노동개혁 골든타임’이라며 지상파TV 광고도 했습니다.

경제활성화법도 이제는 익숙해진 표현입니다. ①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②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③관광진흥법을 묶어 부르는 말인데요. 이 법들이 통과되면 경제가 활성화할 것처럼 프레임을 형성하고 있죠. ‘현재 경제 위기의 원인은 법 통과 제대로 안 해준 국회 탓’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레토릭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은 기존 공정거래법이나 상법을 넘어서서 규제를 한번에 완화하는 내용이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다른 법에 앞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개혁”하고 “활성화”하려는데 왜 발목을 잡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언론들도 이 표현들을 그대로 사용하며 확대 재생산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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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제는 자르고 한쪽만 보여주기

한중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비준이 늦어지는 만큼 당장 손해보는 규모가 하루에 자그마치 40억원”이라고 말하기를 반복했습니다. 40억원을 언급하며 야당한테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있다”고 꾸짖기도 했지요. 이 40억원은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FTA 발효 뒤 제조업 1년차 수출 증가액 13.5억달러를 365일로 나눈 것입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10일 중국 베이징 페닌슐라호텔 프레스센터에서 한중 정상회담의 경제 성과와 FTA 협상의 실질적 타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베이징/ 청와대사진기자단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10일 중국 베이징 페닌슐라호텔 프레스센터에서 한중 정상회담의 경제 성과와 FTA 협상의 실질적 타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베이징/ 청와대사진기자단

FTA 효과는 양국간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니, 이를 따질 때는 수출과 수입 증가분을 더하고 빼기 한 ‘무역수지’를 봐야 하는 게 기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한 쪽만 언급하며 구호로 사용했습니다. 같은 논리라면 중국산 수입 증가분 40억원(13.4억달러÷365일)은 비준이 늦어질수록 이익이라는 말이 됩니다. FTA 효과는 이렇게 단순하게만 얘기하긴 어렵습니다. 수입산 유입이 늘어날 때 소비자후생이 증가하는 효과도 있고, 관세 인하로 중국 기업한테 받을 관세 수입의 감소분도 봐야 합니다. 또 제조업만 따질 게 아니라 농수산업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 관련 기사
[팩트체크]한·중 FTA 늦어 하루손실 40억? http://me2.do/FdPL7rRs
이에 대한 정부의 해명 http://me2.do/FG0IFfe8

비슷한 맥락에서 박 대통령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이 법이 통과되면 일자리 69만개가 생겨…”입니다. 국회 연설을 비롯해 국회를 지적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쓰는 표현이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되면 일자리가 69만개 생긴다는 것입니다. KDI의 보고서가 수치의 출처인데요. 여기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69만개가 되려면 “국내 서비스산업이 미국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발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전제를 생략한 채, ‘69만개’라는 구호만 내세우곤 하죠.

보고서에는 독일 수준이 된다면 15만4300명, 네덜란드 수준이 되면 33만5000명이라고도 나와 있습니다. 보고서는 심지어 “현재 추진 중인 서비스업 개혁이 이러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고, 우리 서비스업이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발전할 경우의 기대효과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의사항을 달기도 했습니다.

◎ 관련 기사
“일자리 70만개”…과장 논란 http://me2.do/GEBnIc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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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견강부회식 성과 부풀리기

엊그제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한 ‘이란발 42조 성과’ 헤드라인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2015년 1분기 외국인직접투자 동향을 발표하면서, 대통령 중동 순방 전후로 우리나라 투자가 급증했다고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례로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아람코와, 두바이투자청 투자를 들며 금액을 적시했습니다.

1분기 외국인직접투자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국가별) 대통령 중동순방 전후로 중동지역의 우라니라에 대한(對韓) 투자*가 급증
* 중동 투자현황(신고, 억 달러): (‘11) 0.9 →(‘12) 0.5 →(‘13) 0.8 →(‘14) 2.3 →(‘15.1Q) 2.1
(중동지역 투자 사례)
ㅇ 사우디 A사의 국내 B사 추가 지분인수(18.4억불 도착)로 B사에서는 원유 공급의 안정성 확보 뿐만 아니라 5조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추가증설 및 연구센터 설립 중
ㅇ 아랍에미리트(UAE) C사의 국내 D사 지분인수(1.5억 달러 신고, 도착)로 D사는 중동지역 건설시장 진출에 전략적 지위 확보

그런데 찾아봤더니, 아람코 투자는 대통령 순방 8개월 전에 결정·발표된 건이었고, 두바이투자청 건은 1분기 이전에 법원이 쌍용건설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두바이투자청을 선정한 건이었습니다. 몇달 전 발표된 투자를 가지고 ‘순방 성과’라고 포장한 겁니다.

이를 지적하는 기사(http://me2.do/FHbUAJ65)에 산업부는 이런 해명 자료를 내놨습니다.

o 사우디 A社의 국내 B社 추가 지분인수는 작년 9월중 투자계획이 신고 되었으나, 실제 투자금액 도착은 금년 1월중 이루어졌음
- 사우디 A社의 내부적 의사결정에 따라 투자자금이 유럽지역을 경유하여 도착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행 외국인 직접투자 통계 작성 기준에 따라 유럽지역 실적으로 집계되어 발표되었음
o UAE C社의 국내 D社 지분인수 사례의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14.12월) 이후, 계약체결(’15.1) 및 투자금액 신고?도착(’15.2)과 법원의 회생계획안 최종인가(’15.2)의 절차를 통해 확정된 투자건임
-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협상과정에서 계약이 무산되는 사례가 다수 있으며,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은 신고 혹은 도착시 집계되므로 동 투자건의 경우 1분기 실적에 포함되는 것이 타당

요컨대 계약은 이전에 신고됐지만, 실제 돈이 들어온 건 대통령 순방 기간이 포함된 1분기였다는 겁니다.

이 해명자료에서 정부가 쓴 표현대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은 MOU도 마찬가지인데요. 같은 논리라면 이번 이란 순방에 대해 브리핑할 때 42조원을 성과로 내세우는 것도 무리 아닐까요? MOU가 다수였거든요.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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