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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된 정의’…다시 칼날 위에 선 ‘친박 3인’

등록 2017-03-03 15:07수정 2017-03-14 09:19

정치BAR_‘피의자·피고인’ 최경환·이정현·김진태의 운명은?_정치바
왼쪽부터 이정현(무소속)·최경환·김진태(자유한국당) 의원
왼쪽부터 이정현(무소속)·최경환·김진태(자유한국당) 의원

서산에 해가 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5년차. 마지막으로 천지를 발갛게 물들일 기회조차 있을지 모르겠다. 약 일주일 뒤면 그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친박’은 인간 박근혜에 대한 존경과 숭앙으로 탄생한 정치적 결사체다. 박 대통령의 실각 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들 주군의 운명과 똑같이 당장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이들이 있다. 최경환·이정현·김진태 3인이다.

최경환, 중진공에 인턴 채용 압박…재수사 끝 16개월 만에 검찰 조사받아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채용 비리의 핵심 인물이다. 최 의원이 중진공 간부들에게 압력을 넣어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 근무했던 황아무개씨를 ‘억지로’ 취직시켰다는 게 의혹의 뼈대다. 2009년 1월부터 최 의원의 경북 경산 지역구 사무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황씨는 2013년 하반기에 중진공 공채에 지원했다. 36명 모집에 45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1차 서류전형에서 그의 등수는 2299등. 그러자 중진공 실무자들이 황씨의 자기소개서와 경력을 조작해 2299등에서 1200등으로 등수를 올렸다. 출신학교와 어학점수에까지 손을 대 176등까지 끌어올렸다. 2번이나 ‘작업’을 했는데도 황씨는 서류전형 커트라인인 170등에 들지 못한 것. 그러자 중진공은 서류 합격 인원을 176명으로 늘렸다. 각종 조작과 특혜로 1차 서류전형에 ‘문 닫고’ 합격하게 한 것이다. 2차 인·적성 검사 결과 그는 164등이었지만 그는 최종 합격했다. 2299등이 36등으로 둔갑한 결과다.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국회에서의 폭로,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정권 실세 앞에선 검찰권은 무력하기만 했다. 검찰은 박철규 중진공 이사장의 주소지가 안양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수사력 좋은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배당했다. 지방의 조그만 지청에서 수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사건의 핵심인 최 의원을 검찰청으로 부르지도 못하고 서면조사로 갈음했다. 2016년 1월 안양지청 형사3부(지청장 이상용·부장 장기석)는 4명을 부정 채용한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박철규 이사장과 권아무개 운영지원실장만을 불구속 기소했다. 청탁자인 최경환 의원은 쏙 빠져나갔다. “채용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잘 봐달라는 취지로 부탁한 것으로 범죄에 이를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8개월 뒤 상황이 달라졌다. 피고인의 몸으로 법정에 선 박철규 전 이사장이 2016년 9월,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2013년 8월1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을 찾아 최 의원을 만났고 “(황씨가) 2차까지 올라왔는데 외부위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여러 가지 검토했지만 (황씨는) 불합격 처리하는 게 좋겠다고 보고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최 의원은 “(내가) 결혼도 시킨 아이인데 그냥 해(합격시켜). 성실하고 괜찮은 아이니까 믿고 써 봐”라고 답했다고 했다. 박 전 이사장이 거듭 “다음에 응시하는 게 좋겠다”고 했으나 최 의원의 답은 “그냥 해”였다고 한다. 박철규 전 이사장은 왜 법정에 와서야 뒤늦게 진실을 털어놓은 걸까. 그는 “당시 심신이 많이 지쳤고 ‘말한다고 상황이 뭐가 달라지겠나’ 생각했다. 청탁자는 처벌받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본인이 사실대로 진술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최 의원이 처벌받지 않을 거라는 낙담이었다. 서면조사만 하고 최 의원을 무혐의 처분하는 검찰의 소극적 태도도 그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을 거다. 진실 규명에는 검찰의 수사 의지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부정채용의 명백한 진술이 나온 터라 검찰은 재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경력과 점수까지 조작해 ‘신의 직장’인 공기업에 기어코 채용시킨 행태는 교수들이 나서서 입학시키고 학점까지 챙겨준 ‘정유라-이화여대 사건’과 똑같았다. 박철규 이사장의 ‘양심 고백’이 2016년 9월에 있었지만 재수사 속도도 여전히 더뎠다. 그러는 사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확인되고 친박의 ‘주군’ 박근혜가 휘청거렸다. 12월9일,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최 의원은 유일하게 불참했고 “굽은 소나무가 되겠다”며 경북 경산 지역구로 내려갔다. 검찰은 올해 1월에야 소환을 통보했으나 최 의원은 이에 불응했다. 검찰은 헌재의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끝난 뒤인 3월2일에 출석하라고 최 의원에게 거듭 통보했다. 그는 결국 3월3일, 뉴스의 ‘사각지대’인 금요일에 안양지청에 출석했다. 중진공 채용 비리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 1년4개월 만이었다. 참 오래 걸렸다. 그러나 그는 약속 시각인 오후 1시간30분보다 4시간 먼저 검찰청으로 나왔다. 포토라인에 서는 걸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비공개 조사, 서면조사 등은 검찰이 실세들에게 베푸는 기본적인 특혜다. 최 의원은 더 이상 ‘비공개 소환’이라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자 기습출석으로 손수 포토라인을 피했다. 그의 몸부림이 기소까지 막을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이정현, ‘세월호 보도통제’ 방송법 위반…올해 4월이 공소시효

이정현 의원은 지금 무소속이다. 지난해 8월, 총선 패배의 충격에도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돼 끝까지 박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을 불태웠던 그때가 인생의 절정이었다.

2016년 7월3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영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당 대표 선거에 나선 이정현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창원/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6년 7월3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영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당 대표 선거에 나선 이정현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창원/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그는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책임을 지라는 당내의 압력에 “직전 당 대표로서 모든 책임을 안고” 새누리당을 나왔다. 그러나 그에겐 아직 책임이 남아있다.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이었던 2014년 4월 그는 해경의 세월호 늑장 구조를 비판하는 <한국방송>(KBS) 보도 통제에 나섰다. 2014년 4월21일 밤, 그는 김시곤 한국방송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 그게 맞냐”, “방송이 해경을 밟아놓으면 어떻게 하겠냐”며 보도에 항의했다.

4월30일 밤에는 “오늘 저녁 뉴스하고 내일 아침까지 나가나. 좀 바꾸면 안 되나”, “다른 걸로 대체를 좀 해주든지 녹음 한 번만 더 해달라”고 말했다. 그의 육성은 김 국장의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녹음돼 보관됐다. 방송법 4조에서는 “이 법에 의하지 않고는 방송편성에 관하여 어떠한 규제와 간섭도 해선 안된다”고 규정해놓았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016년 6월, 이 의원을 방송법 위반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특조위가 고발한 사건은 3개월 안에 처리하라는 게 세월호특별법 규정이지만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박재휘)는 “3개월 내 처리 규정은 강제 규정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그해 9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전이었고 그때 이 의원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대표였다.

이제 방송법 위반죄의 공소시효(3년)가 다가오고 있다. 김시곤 국장에게 가해진 이 의원의 마지막 압력전화가 2014년 4월30일이므로 검찰은 2017년 4월29일까지 이 의원의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는 정치인 박근혜를 향한 충성심만은 대한민국 최고였다. 박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 ‘봄꽃대선’이 펼쳐지고 이 의원 공소시효 만료일인 2017년 4월29일은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 된다. 그는 어떤 모습으로 대선을 맞이하게 될까. 주군과 신하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 것인가.

검찰의 ‘무혐의 서비스’ 김진태 선거법 위반, 법원이 직권으로 재판에 넘겨

2012년 19대 총선 때 처음 배지를 달은 검사 출신의 김진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지만 ‘친박 돌격대’를 자임했다. 18대 국회 때는 세월호 선체 인양을 반대하며 “세월호에 남아있는 시신을 위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등의 막말로 인지도를 높였다. 박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지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도 처음부터 달려나간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지난 1일 3.1절 탄핵 반대 집회에서 태극기를 두르고 연설하고 있는 김진태 의원. 김진태 의원 페이스북.
지난 1일 3.1절 탄핵 반대 집회에서 태극기를 두르고 연설하고 있는 김진태 의원. 김진태 의원 페이스북.
그런 그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김 의원은 지난해 4·13 총선에서 허영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엎치락뒤치락 접전을 벌였고 6000여표 차이로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춘천시선거관리위원회는 김 의원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역구인 춘천시 주민 9만여명에게 뿌린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약이행평가 71.4%로 강원도 3위”라는 문자메시지가 문제였다. 거짓말이었다. 선관위는 그의 거짓말을 중대한 위법 행위로 판단하고 ‘수사 의뢰’가 아닌 ‘고발’로 처리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춘천지검(지검장 최종원·부장검사 장봉문)은 김 의원을 서면조사만 했다. 그리고 “선거법 위반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구로 지역 모든 학교의 반 학생 수를 25명으로 줄였다”는 ‘허위사실’을 50여명에게 공표한 혐의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기소한 것과 비교됐다. 박 의원은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해 “지역구인 구로을 지역의 평균 학생 수는 24.9명으로 허위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박 의원은 ‘모든 학교’의 학생 수를 줄였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박 의원 지역구에 있는) 신도림중학교는 반 학생 수가 25명을 초과했는데도 이를 고의로 숨기고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진태와 박영선에게 들이댄 검찰의 잣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춘천시 선관위는 춘천지검의 김진태 의원 무혐의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정신청을 냈고 서울고법은 지난달 2일, 이를 받아들였다. 검찰의 무혐의가 잘못된 판단이라며 법원이 직권으로 기소를 결정한 것이다. 김 의원은 법원의 재정신청 인용 결정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담당 법관이 좌성향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 설마 했는데 역시나”라고 적으며 특유의 ‘색깔론’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난생처음 재판을 받게 됐는데 대통령님이 당하는 것에 비하면 천분의 일도 안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정신승리’였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가 말해주듯 박근혜 정권은 권력기관을 동원해, 때로는 음습하게 때로는 티 나게 반대파를 탄압하고 자기편을 보호했다. 검찰을 확실하게 장악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친박 정치인들에게 어떤 편의를 제공했는지 밝혀진 건 없다. 그러나 이들은 보통의 피의자들이 거치는 압수수색이나 소환조사 등의 ‘고초’를 겪지 않았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나 ‘수사 유보’ 결정의 혜택을 입었다. 이제 검찰을 장악하고 있는 ‘우꾸라지’는 없다. 그들의 든든한 뒷배경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도 정지됐고 그가 사유화했던 권력을 다시 회복할지도 미지수다. 사법정의를 거스르는 위험천만한 역주행의 길을 헤쳐온 그들, 다시 칼날 같은 심판대 위에 섰다. 결말은 누구에게 해피엔딩일까.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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