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철수: "문재인 후보에게 묻는다.
제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인가?" 문재인: "항간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내 입에 한 번도 올린 적은 없다. 달리 답할 방법이 없다."
(4월23일 3차 TV대선 토론회)
#2
홍준표: (다른 후보들의 돼지 흥분제 사퇴 촉구에) “다시 말하지만 45년 전 그 사건은 정말
국민에게 죄송하다. 다시 한 번 사죄 말씀드린다.” (4월23일 3차 TV대선 토론회)
#3
심상정: 홍 후보는 주적이 노조입니까?
주적이 노조예요? 홍준표:
난 주적으로 얘기한 적 없습니다. (4월28일 5차 TV대선 토론회)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제가 엠비 아바타인가”라고 할 때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돼지흥분제’ 논란으로 다른 후보들에게 사퇴 요구를 받았을 때 느낀 감정은? 5차 TV 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홍 후보가 ‘귀족노조’ 공방을 벌일 때 심 후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비영리 정치통계연구소 ‘상수동전략그룹’(전략그룹)이 홍익대학교 게임학부 강신진 교수팀(EGLAB)이 개발한 ‘감정분석 플랫폼(Emotion Tracer)’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안 후보는 당시 이슈에 대해 피하고 싶은 ‘불편함’을, 홍 후보는 ‘불편함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귀족노조’ 공방 때 심 후보의 주된 감정은 ‘자신감’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대선 후보 TV토론회가 진행되면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정치’를 분석하고, 즐기는 흐름이 계속되는 가운데 후보들의 ‘속마음’을 엿보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상수동전략그룹은 더불어민주당 경선 때부터 토론회가 끝난 뒤 후보들의 얼굴 표정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시각화된 그래프로 감정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http://www.sangsoo.org/)
3차 TV 토론회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감정흐름. 상수동전략그룹 제공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이는 얼굴 표정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폴 에크먼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제시한 ‘얼굴 움직임 해독법(FACS·Facial Action Coding System)’에 기반을 둔 방식이다. 에크만 교수는 사람의 얼굴 근육의 움직임 등을 분석해 기쁨(joy), 불편(disgust), 분노(angry), 슬픔(sad), 놀람(surprise), 껄끄러움·회피(fear) 등 6개의 범주로 분류했다. 국가와 문화와 상관없이 6개의 핵심 표정이 존재한다는 게 에크만의 주장이다. 에크만의 모델은 최근 인공지능 기술과 만나며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아이티(IT)기업들은 얼굴 표정 인식기술과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로 제품이나 광고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파악하는 기술로 개발되거나 수사기관이 얼굴을 인식해 범죄자를 잡는 데 활용되는 흐름이다. 그런데 전략그룹은 이를 ‘정치’에 적용했다.
상수동전략그룹은 2차 토론회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전술핵 재배치를 놓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공방을 벌일 때 문 후보의 감정은 ‘분노’라고 분석했다.
2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전략그룹의 사무실을 찾았다. ‘전략그룹’이라는 거창한(?) 이름에서 예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2평 남짓한 공간에 신원기(35), 조수운(31) 2명의 상근자가 컴퓨터 2대를 놓고 텔레비전 토론회 영상을 두고 씨름하고 있었다. 애초 이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여론조사와 온라인 여론 흐름을 분석하는 플랫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미’로 감정분석을 시작했다. “후보들이 정책과 비전을 설명할 때 진정성이 있을까”라는 궁금함 때문이다. 신씨는 “원래는 문재인 후보가 검찰 개혁을 이야기할 때, 안철수 후보가 4차산업 혁명을 말할 때의 표정과 감정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라는 첨단 기술을 활용하지만, 이들은 TV 토론회가 끝난 뒤 밤샘 작업을 한다. 인공지능이 후보들의 얼굴 표정을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토론회 영상을 편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토론회를 동시 녹화한 다음, 토론회가 끝나면 후보들의 표정이 제대로 나온 영상 편집본을 만들어 감정분석플랫폼에 입력한다. 인공지능은 이 영상을 초당 30프레임으로 분석하고 후보들의 감정 흐름을 제시한다. 여기서 작업이 끝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후보들의 감정 변화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정이 도드라지는 구간에서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3~4번 영상을 돌려보며 토론회 당시 발언과 후보들 사이의 공방 등의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신씨는 “영상을 하도 보다 보니 후보들의 발언을 외우다시피 하게 됐다. 최근에는 후보들 성대모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후보들의 진정성을 살펴보려 했다”는 이들의 애초 의도는 성공했을까? 신씨는 “토론 앞뒤의 정치적 공방이 감정에 영향을 끼치다 보니 실제 공약과 정책을 이야기할 때는 순수한 감정을 분석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조씨도 “정치적 공방은 볼 때는 재미있는데 끝나고 나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전략그룹은 대선 이후에는 애초 목표대로 빅데이터를 활용해 여론조사와 온라인 여론 흐름 등의 정치 분석을 이어갈 계획이다. 특히 2018년 지방선거 때 빅데이터를 이용한 선거 분석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상수동전략그룹 신원기(35·왼쪽)이사장과 조수운(31) 이사
신씨는 2013~2016년 동안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로 일하며 소득에 따른 실제 부담세금과 분야별 지출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인 ‘소세지(소득-세금-지출)’를 만들며 빅데이터의 위력에 눈을 떴다. 정치에 관심이 많던 조씨는 멀쩡히 다니던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통계학 전공을 살리자”는 신씨의 설득에 넘어가 의기투합했다.
연구소 이름에 왜 ‘상수동’을 붙였냐고 묻자, 이들은 “‘여의도’와 가까운 느낌이 나서”라고 답했지만,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여의도’와는 다른 정치 해독 기법을 찾는 일이다. 이들은 “기존의 여의도 중심의 정치 평론, 여론조사의 한계, 편향적인 정치 분석 등에 답답함을 느끼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재미있는 일을 해보겠다는 마음에 전략그룹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기존 정치 평론가들의 분석은 장황하고, 편향돼 있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여론조사도 갈수록 힘을 잃는 것 같다”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정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조씨도 “미국은 빅데이터 선거가 대세인데 우리는 여전히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며 “‘감’으로 선거를 분석하는 것은 이제 힘을 잃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독립적 기관으로 중립성을 잃지 않기 위해 이들은 회원들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사무실을 운영해보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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