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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그컵은 죄가 없다…국회 반입 금지 물품에 얽힌 사연

등록 2017-07-06 11:43수정 2017-07-06 19:43

정치BAR_국회법148조의 흑역사

“규정상 머그컵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고 하네요. 머그컵이 아마 위험이 있어서 안된다고 해서 저희가 오후에는 위원장님 말씀도 계시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종이컵을 다시 쓰게 됐습니다”(김은경 환경부 장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일 인사청문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자제’를 솔선수범하겠다는 의지로 머그컵을 쓰다가 오후에 종이컵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는 국회법 제148조 ‘회의진행 방해 물건 등의 반입 금지’에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 안에 회의 진행에 방해되는 물건 또는 음식물을 반입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었죠. 물론 법에서는 머그잔같이 특정 물건을 반입 금지 물품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머그잔이 깨질 수 있고, 던질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머그컵은 죄가 없습니다. 69년 헌정 역사 동안 회의장 안에 비치된 재떨이, 명패, 유리컵 등을 두고 여러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해당 물건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걸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문제겠죠. 회의장 안 반입 물품을 두고 벌어졌던 ‘흑역사’를 정리해봅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던 중 머그잔에 담긴 물을 마시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던 중 머그잔에 담긴 물을 마시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명패’와 ‘재떨이’, ‘종이뭉치’ 등이 날아다니는 ‘비행장’

“일구일(19일) 아침 국회운영회에서는 이날 본회의에 상정할 안건 결정 문제로 여야의원 간에 언쟁이 벌어진 끝에 급기야 명패·재떨이·유리컵 등으로 서로 두들겨 패는 등 예산안을 둘러싼 유혈 소동이 또 벌어졌다. (중략) 마침내 이 의원의 입에서는 ‘후레자식’이란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 의원보다 나이가 위인 김 의원은 이 욕설에 극도로 흥분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재떨이를 이 의원에게 집어 던지자, 이 의원도 지지 않고 명패를 들어 김 의원을 치는가 하면...”

드라마나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1958년 8월20일 <동아일보> 3면에 실린 ‘재떨이·컵 等(등) 亂飛(난비·어지럽게 날아다니거나 분분함)’라는 기사의 한 대목이다. 이 당시 국회 회의장에는 사기 재떨이와 자개 명패가 놓여있었다. 토론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던 1950~60년대, 회의가 감정싸움으로 치달으면 재떨이나 명패가 어김없이 ‘무기’가 된 것이다. <동아일보>의 1958년 12월13일 2면 기사는 ‘의사당’이란 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냉소가 담긴 풍자였다.

①국회의원들의 격투장

②국사는 집어치우고 사사만 논쟁하는 집안 싸움터

③‘무료극장’ 의무대

④명패와 재떨이 종이뭉치 등이 날아다니는 비행장

⑤이따금씩 ‘거수기’와 ‘녹음기’의 성능 테스트를 하는 공개실험실

재떨이와 명패가 본래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국회 차원에서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국가기록원은 “그래서 맞아도 덜 다치고 소리만 큰 양은 재떨이로 바뀌었다가 후에는 아예 던지지 못하게 고정식으로 해놓기도 했다. 하지만 힘센 몇몇 국회의원들이 이것까지 뜯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1973년 2월 국회법으로 회의장 안 흡연이 금지되면서 재떨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명패는 2005년 9월 본회의장이 전산화되면서 고정식 전자명패로 교체됐다. 상임위원회 회의장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가 쓰인 플라스틱 명패가 사용되고 있다.

김종필 국무총리가 1972년 7월6일 제82회 임시국회에서 남북공동성명 관련해 설명하는 모습. 의원들 자리에 사기 재떨이와 자개 명패가 놓여있다.  e영상역사관
김종필 국무총리가 1972년 7월6일 제82회 임시국회에서 남북공동성명 관련해 설명하는 모습. 의원들 자리에 사기 재떨이와 자개 명패가 놓여있다. e영상역사관
■ 유리컵으로 동료를 내리친 의원

1996년 9월20일 조간신문에는 “국회의원 이번엔 폭행 추태“, “동료 의원 폭행’등의 헤드라인이 달린 기사가 앞다투어 보도됐다. 9월19일 정우택 당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의원(현재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실에서 국정감사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방용석 새정치국민회의 의원과 언쟁을 벌이다 방 의원의 머리를 유리컵으로 세 차례 찍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이가 8살 많은 방 의원이 “왜 반말하느냐”고 따지자, 정 의원이 “내가 언제 반말했냐”고 맞서다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방 의원은 머리에 피를 흘려 응급처치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사건은 국회의장과 환경노동위원장이 정 의원에게 구두경고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정 의원은 방 의원과 국회 의장 등에게 사과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야권 공조 관계를 유지하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사건이 두 당의 관계에 손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데 이해관계가 일치했다”고 한다. (<한겨레> 1996년 9월21일치 4면 ‘야 유리컵 폭행 서둘러 봉합’) 당시 조간 신문들은 “제 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징계”라고 일제히 비판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 정 의원은 "(방 의원이) 갑자기 내쪽으로 몸을 날려서 앞에 있던 잔을 들어서 막았더니 부딪혔다”고 해명한다.

1996년 9월20일 경향신문 6면 기사. 경향신문 누리집
1996년 9월20일 경향신문 6면 기사. 경향신문 누리집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국회 상임위원장 회의장 등에서 물을 마시는 용도로 대체로 종이컵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2000년 10월27일 열린 행정자치위원회의 전라북도 국정감사 회의 시작 5분 전, 공무원들이 책상 위에 놓인 유리컵을 종이컵으로 교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는 상임위원회 회의장 등에 페트병에 담긴 생수와 종이컵이 비치돼 있다.

■ 노트북과 국회법 148조

2003년 10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의를 위해 노트북을 갖고 단상에 오르던 박원홍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 부의장과 사무처 직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조부영 국회 부의장은 “국회법상 노트북 컴퓨터는 반입할 수 없다”고 말하며 마이크를 끄라고 지시했다. 박 의원은 질의에 앞서 마이크가 꺼진 채 2분간의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본회의장에서 노트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의원들이 몸싸움할 때 흉기로 사용된다는 것인데, 이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노트북 사용에 주의를 주지 말고) 차라리 국회를 무시하고 넥타이를 안 매고 온 의원이나 주의를 주라.” 그는 “대한민국 국회도 네티즌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 의장단은 물론 국회의원들도 본회의장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렇게 되면) 보수 꼴통 국회가 됩니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결국 박 의원은 노트북을 덮은 다음에 질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국회 회의장에서 노트북 사용을 금지한 이유는 노트북이 ‘흉기’로 사용되기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국회법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었다.

국회법 148조 (끽연 등의 금지)

①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안에서 음식이나 끽연을 할 수 없으며, 의안과 관련 없는 신문·잡지 기타 간행물 등을 열독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 안에서 휴대전화기를 사용하여서는 아니 되며, 본회의의 회의장 안에서 개인휴대컴퓨터를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의원들이 ‘한눈을 팔아’ 회의진행에 방해가 된다는 시각이 담긴 조항이었다. 1999년 4월 국회 정치개혁특위도 거듭 회의장 안 노트북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치개혁특위의 주장은 “회의장에서 노트북을 작동하면 신문이나 잡지처럼 의원들을 산만하게 해 의정활동을 방해할 것”이었다. (<경향신문> 1999년 4월6일치 4면 ‘변화 거부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네오 러다이트族(족) 스스로 눈감는 ‘컴맹 의원님’)

결국 이 조항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2005년 7월,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 안에 회의진행에 방해되는 물건 또는 음식물을 반입하여서는 아니 된다”로 개정됐다. 현재 국회 본회의장 의원들의 자리에는 컴퓨터가 비치돼 있다. 의원들은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도 회의장에서 자유롭게 쓰고 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의 경우 의원은 아니지만, ‘회의의 원활한 진행’의 입법 취지에 따라 의원과 동일한 조항을 적용해 머그컵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국회의 설명이다.

현재 국회 본회의장은 전자명패와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현재 국회 본회의장은 전자명패와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흉기가 사라진 자리엔...

2012년 국회법이 개정되며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뒤 국회 회의장에서 몸싸움은 사실상 사라졌다. 당연히 회의장에 비치된 물건들이나 의원들이 가지고 들어간 물품들이 ‘무기’나 ‘흉기’가 되는 일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의원들이 ‘딴짓’을 하거나 음식물을 먹다가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돼 논란이 됐다. 2013년 4월 심재철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누드사진을 검색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비판을 받았다. 당시 그는 “스마트폰에서 성인 인증 없이 성인 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는 실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지, 의도적으로 누드 사진을 검색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2015년 12월에는 이자스민 전 의원(새누리당)이 본회의장에서 과자를 먹다가 논란이 됐고, 2016년 5월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도 과자를 먹는 의원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3일 김은경 장관 청문회에서 “머그잔을 사용하다 종이컵을 사용하기에 의도적인 퍼포먼스가 아닌가”라고 질문했던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도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정활동 초기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김 장관에게 “오해한 것 같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신 의원은 “생각해보니 저도 의정활동 초기 핸드폰 셀카봉으로 '보라리틀텔레비전' 촬영을 하려고 본회의 시작 전에 잠시 본회의장에 셀카봉을 들고 갔었는데, 직원분께서 제지하셨다”며 “본회의장에는 회의에 필요한 자료 외의 물건을 일체 금한다고, 던지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며. 그래서 잠시 찍기만 하고 회의 시작 전에 나간다고 양해를 구한 일이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34살의 젊은 초선 의원이 겪을 법한 이야기다. 그는 “그간 국회의 여러 갈등의 역사로 인한 결정이었을 듯 한데, 씁쓸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남상백 교육연수생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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