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이회창, 회고록서 역대 대통령 평가
“YS의 회고록은 사실과 달라”
“DJ는 무능·무책임…실패한 정치인”
“노무현, 불법 정치자금 단절에 기여”
“박근혜, 대통령 되리라곤 미처 몰랐다”
“YS의 회고록은 사실과 달라”
“DJ는 무능·무책임…실패한 정치인”
“노무현, 불법 정치자금 단절에 기여”
“박근혜, 대통령 되리라곤 미처 몰랐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쓰겠는데 실패한 사람이라서 안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제가 있던 한나라당, 야당으로서의 역사가 잊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지들과 야당의 역사를 남길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고, 내가 아니면 누가 이걸 쓰겠느냐고 생각했다.”
- 8월22일 세종문화회관 회에서 열린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 회고록 출판기념 기자간담회
지난 1996년 1월22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당에 입당한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청와대에서 만나 손을 잡고 있다. e영상역사관(정부기록사진집)
◎<회고록1> 422~424쪽
불쾌한 일은 또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한 후 회고록을 냈는데, 그 회고록에서 나의 국무총리 사퇴에 관한 부분을 보니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요지는 면담 때에 나에게 책임을 추궁하자 내가 “잘못했으니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라면서 시종일관 변명을 했고, 또 나에게 지금 당장 사표를 내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해임 조치하겠다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면담 후 내가 박관용 비서실장을 찾아가 여러가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고도 써놓았다. 어떻게든 나를 깎아내리려는 이런 사실과 다른 회고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대꾸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지만 이것은 나의 명예에 관한 것이므로 분명히 해두려 한다. (중략) 나는 김 대통령에게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 관한 총리의 조치가 정당한 것이었음을 적극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당초 생각해둔 대로 사의를 표명했던 것이다. 내가 사과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가 나에게 사퇴하라거나 해임하겠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중략) 대통령의 회고록은 사실과 다르다.
불쾌한 일은 또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한 후 회고록을 냈는데, 그 회고록에서 나의 국무총리 사퇴에 관한 부분을 보니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요지는 면담 때에 나에게 책임을 추궁하자 내가 “잘못했으니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라면서 시종일관 변명을 했고, 또 나에게 지금 당장 사표를 내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해임 조치하겠다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면담 후 내가 박관용 비서실장을 찾아가 여러가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고도 써놓았다. 어떻게든 나를 깎아내리려는 이런 사실과 다른 회고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대꾸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지만 이것은 나의 명예에 관한 것이므로 분명히 해두려 한다. (중략) 나는 김 대통령에게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 관한 총리의 조치가 정당한 것이었음을 적극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당초 생각해둔 대로 사의를 표명했던 것이다. 내가 사과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가 나에게 사퇴하라거나 해임하겠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중략) 대통령의 회고록은 사실과 다르다.
1998년 11월10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e영상역사관(정부기록사진집)
◎<회고록2> 207쪽
다만 DJP 연합에 대해 이것만은 꼭 말해 두고 싶다. 나는 위에서 사후 분석이 내놓은 필패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1.6% 퍼센트(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라도 진 것은 진 것이다. 선거에서는 이기고 보아야 한다. 어설픈 정의나 도덕론은 쓸데없다. 이것이 정치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DJP 연합이라는 선거 연대 자체를 그것이 야합이라는 이유로 그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유효한 수단이 되었고 그것을 막지 못한 내가 패자가 된 것은 엄연한 현실이 아닌가. 요컨대 선거에 진 것은 나의 잘못이지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다만 DJP 연합에 대해 이것만은 꼭 말해 두고 싶다. 나는 위에서 사후 분석이 내놓은 필패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1.6% 퍼센트(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라도 진 것은 진 것이다. 선거에서는 이기고 보아야 한다. 어설픈 정의나 도덕론은 쓸데없다. 이것이 정치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DJP 연합이라는 선거 연대 자체를 그것이 야합이라는 이유로 그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유효한 수단이 되었고 그것을 막지 못한 내가 패자가 된 것은 엄연한 현실이 아닌가. 요컨대 선거에 진 것은 나의 잘못이지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2002년11월15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국교육자대회에 참석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노무현재단
◎<회고록2> 534쪽
이렇게 대선 자금 사건은 내 삶에서 나에게 가장 치욕스럽고 뼈아픈 회한을 남겼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이 정치인들에게 대선 자금을 제공하던 과거의 관행은 이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 보면 여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기여한 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승자의 대선자금은 건드리지 않는 관행을 깨고 검찰이 자신의 대선자금을 조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앞일을 생각해야 하는 기업이 승자에 제공한 자금 내역에 대해 사실 그대로 밝히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검찰이 119억원의 노무현 당선자 불법자금을 밝혀낸 것은 과거에 없던 일이다. 이것이 잘못된 관행을 단절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기여한 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대선 자금 사건은 내 삶에서 나에게 가장 치욕스럽고 뼈아픈 회한을 남겼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이 정치인들에게 대선 자금을 제공하던 과거의 관행은 이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 보면 여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기여한 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승자의 대선자금은 건드리지 않는 관행을 깨고 검찰이 자신의 대선자금을 조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앞일을 생각해야 하는 기업이 승자에 제공한 자금 내역에 대해 사실 그대로 밝히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검찰이 119억원의 노무현 당선자 불법자금을 밝혀낸 것은 과거에 없던 일이다. 이것이 잘못된 관행을 단절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기여한 바라고 생각한다.
2002년 12월17일 대전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선거 유세에 함께한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왼쪽)와 박근혜 의원. e영상역사관(정부기록사진집)
◎<회고록>197쪽
뒷날의 일이지만 2002년 대선 패배 후 그가 한나라당을 맡아 천막당사로 옮겨 당의 재기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면서 그의 정치 입문을 받아들인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솔직히 당시 나는 그가 뒷날 대통령까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가 (중략) 탄핵당하고 구속까지 되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뒷날의 일이지만 2002년 대선 패배 후 그가 한나라당을 맡아 천막당사로 옮겨 당의 재기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면서 그의 정치 입문을 받아들인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솔직히 당시 나는 그가 뒷날 대통령까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가 (중략) 탄핵당하고 구속까지 되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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