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후(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MOU체결식’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13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행사에서 중국 고전에서 인용한 한자어를 때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쓰는 말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특히 외교 석상이라면 신중하게 고른 단어나 어휘를 사용합니다. 문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베이징대학 강연 등에서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其利斷金)’, ‘관왕지래(觀往知來)’ 등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모두 ‘함께한다’, ‘협력해서 미래를 열어 간다”는 등의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으로 한·중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사용한 한자어들은 이번 방중을 관통하는 ‘대중 메시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날카로움은 쇠를 절단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15일 베이징대학 강연에서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其利斷金)’이란 말을 인용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한-중 간의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주역>의 한 대목으로 ‘동심지언 기취여란(同心之言 其臭如蘭)’이란 말이 붙어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끊을 수 있으며, 하나 된 마음에서 나온 말은 난초와 같은 향기가 풍긴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한과의 대립과 대결이 아닙니다.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경우
국제사회와 함께 밝은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라며 이 말을 인용했고, “한국과 중국이 같은 마음으로 함께 힘을 합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이루어 내는 데 있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중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문 대통령은 중국 송나라 때 시인·문필가이자 개혁 정치가였던 왕안석의 한시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왕안석의 시 명비곡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인생락재 상지심(人生樂在相知心), ‘서로를 알아주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다’ 저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역지사지하며 서로를 알아주는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습니다. 사드 문제로 경직된 두 나라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해 협력하자는 의미를 에둘러 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시진핑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에서 “관왕지래(觀往知來)란 말이 있듯이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습니다”며 한·중 양국은 세계 평화·번영을 위해 협력해야 할 ‘운명적 동반자’임을 강조했습니다.
‘관왕지래’는 전국시대 도교 사상가 열어구가 쓴 것으로 전해지는 ‘열자(列子)’의 설부편에 나오는 내용의 한 대목입니다. 결국 사드 배치로 한·중 관계가 악화됐지만, 과거 두 나라가 가까웠던 만큼 앞으로도 이 관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면서 두 나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에 방점을 찍은 것입니다.
방중 첫날인 13일, 문 대통령이 참석한 ‘한·중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주공제’는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물을 건너며 고락을 함께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날 행사는 한·중 경제계 인사가 대거 참석한 자리였습니다. 사드 배치로 역시 경직된 두 나라의 재계 관계자들에게 ‘협력’을 강조한 것이죠. 문 대통령은 “동주공제의 마음으로 협력한다면 반드시 양국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중심에 바로 경제인 여러분들이 있습니다”며 “여러분의 성공이 곧 양 국가의 발전입니다. 한·중 경제협력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더욱 힘써 주십시오. 저와 한국 정부도 힘껏 돕겠습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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