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전 서울청장(오른쪽)이 지난 2013년 8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으로 최종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은 전 대구 달서경찰서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한 김용판 전 청장은 죽어가는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지역발전을 이룬다는 신념으로 달서구청장 출마를 선언하였다.”
‘무죄 판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의 눈은 여전히 ‘국정원 댓글 사건’에 가 있다. 2012년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사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김용판 전 천장이 5일 오전, 6·13 지방선거에서 대구 달서구청장 출사표를 던졌다.
김 전 청장은 미리 배포한 출마선언 보도자료의 첫 줄을 ‘대법원에서 억울함이 풀렸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며 정치적 아킬레스건에 대한 선제적 방어에 나섰다. 김 전 청장은 18대 대선 사흘 전이던 2012년 12월16일 한밤중 기습적으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없었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했다. 사실과 다른 수사결과를 발표해 대선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기소됐지만, 2015년 1월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검찰의 미온적 수사와 법원의 소극적 판단이 만들어낸 면죄부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 전 청장이 3년 전에 무죄가 난 사건을 굳이 스스로 꺼내 든 데는 최근 검찰 수사가 과거 밝혀내지 못했던 축소·은폐의 실체적 진실을 들춰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검찰은 김병찬 전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이 국정원에 경찰 수사정보를 사전에 알려준 혐의를 잡아 재판에 넘겼다. 문제의 중간수사결과 보도자료도 국정원에 미리 넘겨준 사실이 드러났다. 이미 무죄가 최종 확정된 김 전 청장에 대한 추가 처벌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론의 관심은 직속상관인 김 전 청장에 다시 쏠리고 있다.
김 전 청장은 5일 오전 대구 두류공원 안 2·28민주운동기념탑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1960년 정·부통령을 뽑는 3·15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선거개입 부정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선 대구 학생들의 의거를 기리는 기념탑이다. 2·28 민주운동은 4·19 혁명으로 이어지며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했다. 대선 여론조작 사건의 한 축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 전 청장이 출마선언을 할 장소는 아닌 셈이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2·28 민주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김 전 청장의 ‘떳떳함’과 달리 경찰청은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를 시작한 국회에 ‘김용판 방지법‘ 등 자체 개혁안을 보고했다. ‘김용판 방지법’은 경찰청장이나 지방청장, 경찰서장 등의 수사 개입을 차단해 수사 왜곡이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막겠다는 것이 뼈대다.
김 전 청장은 지난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대구 달서을에 새누리당 예비후로로 나섰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대형 현수막을 건물벽에 내걸기도 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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