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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상장부터 스타트업까지…현란한 ‘창당의 기술’

등록 2018-02-06 17:40수정 2018-02-06 21:52

정치BAR_여의도 창당의 모든 것
13일 창당 예정 미래당 포함 현재 무려 35개
신설합당·흡수합당 등 분열과 융합 반복한 결과
안철수 대표 불과 4년새 ‘창당의 기술자’ 등극
70년간 200여개 명멸…자유한국당 20년 ‘최장수’
대통령 탄핵소추와 조기 대선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2016년 11월 말 ‘창당 러시’가 시작됐다. 불과 넉달 남짓 만에 12개 정당의 창당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정당법에 따라 200명 이상이 모여 발기인대회를 열어야 창당준비위를 결성할 수 있다. 창당 1단계를 비교적 순조롭게 돌파한 이들에게는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 창당준비위는 그 기간에 최소 5곳 이상의 시·도당을 갖춰야 한다. 또 각 시·도당은 그곳에 주소를 둔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한다. 창당준비위 결성일로부터 6개월 안에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창당준비위는 정당법에 따라 자동 소멸한다. ‘○○○당(가칭) 창당준비위’ 12개는 저마다 6개월을 꽉 채운 이튿날 모두 소멸했다.

민주평화당 창당대회가 열린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배숙 대표가 장병완 원내대표, 소속 의원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당기를 흔들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민주평화당 창당대회가 열린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배숙 대표가 장병완 원내대표, 소속 의원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당기를 흔들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의지는 자유지만 만들기는 참 어려운 정당이 6일 창당한 민주평화당, 13일 창당하는 미래당을 포함해 무려 35개가 있다. 소속 국회의원이 있는 원내 정당은 더불어민주당(121석), 자유한국당(117석), 미래당(33석), 민주평화당(15석), 정의당(6석), 민중당(1석), 대한애국당(1석) 7곳뿐이다. 나머지 28곳은 법정 시·도당, 법정 당원을 갖추며 길게는 10년5개월26일째(국제녹색당) 간판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 녹색당처럼 의석은 없어도 확실한 정치노선과 당비납부 당원을 기반으로 활발한 정책 활동을 하는 곳이 있는 반면, 정당법이 정한 형식 요건만 갖춘 사실상 껍데기뿐인 정당도 많다. 새누리당, 한나라당, 친박연대, 통합민주당 등 과거 잘나갔던 정당의 이름을 가져다 쓰기도 한다. 일부 정당의 강령은 ‘이거 실화냐’는 말이 나올 법한 것도 있다.

■ 여의도의 재래식 무기, 합당·분당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소규모 합병(통합)과 스타트업(창당)이 마무리 단계다. 국민의당 통합 찬성파(20명)와 바른정당(9명)은 설 이틀 전인 다음달 13일 수임기관 합동회의(통합 전당대회)를 열어 미래당으로 합친다. 통합에 반대하는 호남 중진 중심의 국민의당 일부(15명)는 민주평화당을 창당했다. 민주평화당을 택했지만 미래당에 몸이 묶인 비례대표 3명도 표결 등 정치적 행동은 민평당과 함께하기로 했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제2야당, 제3야당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며 정치적 근수를 재는 저울질이 한창이다. 범여권과 범야권이 국회 재적의원(2월6일 현재 296석)을 정확히 ‘148 대 148’로 양분하는 20대 국회 후반기 여야 구도가 두 신생당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집권 중반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소 규모의 합당·분당은 드물지 않다. 정치지형을 흔드는 여의도의 ‘재래식 무기’인 셈인데, 이번처럼 전술핵 수준의 폭발력을 내장하게 된 것은 여야 각자가 분열과 융합을 반복한 결과다. 짧게는 2016년 4·13 총선, 길게는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작된 통합→탈당→창당→분당→통합→분당이라는 연쇄 작용을 거치며 쌓인 정치적 응력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큰 규모로 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 ‘창당 기술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창당 실습 2년차’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있다.

민의당 안철수 대표(오른쪽)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운영회의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해 만드는 신당의 이름을 '미래당'으로 결정한 뒤 당명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 제공
민의당 안철수 대표(오른쪽)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운영회의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해 만드는 신당의 이름을 '미래당'으로 결정한 뒤 당명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 제공
■ 창당 기술자의 탄생 2013년 11월 새정치연합을 만든 안철수 대표는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에서 2014년 3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과 신설합당 형식으로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됐다. 같은 해 7·30 재보선에서 15석 중 고작 4석만 얻어 참패하면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가 무너졌고 이듬해 2월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가 선출됐다. 안 대표는 그해 12월 탈당했다. 안 대표는 탈당 석달여 만인 2016년 2월 국민의당을 만들었고, 4·13 총선에서 제3당으로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안 대표는 2년 만에 또다시 자신이 만든 당을 사정없이 쪼개면서까지 미래당 공동창업주가 됐다. 불과 4년 사이에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쪼개고 다시 만드는 과정이 현란하다. ‘보수본색’인 유승민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마지막까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 남으려 했다. 탈당 막차에 올라타며 바른정당 창당 핵심 멤버가 됐고, 당 대선후보에 이어 당 대표에 올랐다. 4선으로 정치 경력 면에선 안 대표보다 월등하지만, 당세가 약한데다 이제 막 ‘창당의 맛’을 알아가는 유 대표가 창당 주도권을 번번이 안 대표에게 내준다는 평가가 있었다. 당내에서도 “당 대 당 통합인데도 국민의당 처분만 기다리는 종속변수 처지”라는 자조도 나온다.

신설합당이나 흡수합당은 ‘우회상장’에 해당한다. 상장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성장 잠재력을 보고 상장회사에 비상장회사가 올라타는 식이다. 정당법이 신설 또는 흡수합당을 인정하는 취지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정치적 이념이나 정견을 가진 정당들이 합당을 위해 해체한 뒤 새로운 창당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여의도 우회상장’은 소속 국회의원이 없는 원외 정당에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지난해 1월 늘푸른한국당을 만든 이재오 대표는 통화에서 창당 과정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진짜 힘들었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비록 현직은 아니지만 5선 국회의원 출신인 이 대표의 이력은 창당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각 시·도당에 천명 이상씩 법정 당원을 제출해야 하는데, 당원별 주민등록번호를 앞뒤 번호 다 넣어야 한다. 현역의원은 자기 지역구가 있으니 (당원 모집이) 쉬운데, 현역 없는 원외 정당은 진짜 힘들다”고 털어놨다.

1987년 5월1일 흥사단에서 열린 통일민주당 창당대회에서 총재로 선출된 김영삼. 연합뉴스
1987년 5월1일 흥사단에서 열린 통일민주당 창당대회에서 총재로 선출된 김영삼. 연합뉴스
김대중씨와 신당참여의원 25명은 1987년 10월29일 민주당을 일제히 탈당 원외인사 26명등 모두 51명으로 평화민주당창당준비위를 구성했다. 연합뉴스
김대중씨와 신당참여의원 25명은 1987년 10월29일 민주당을 일제히 탈당 원외인사 26명등 모두 51명으로 평화민주당창당준비위를 구성했다. 연합뉴스
■ 백년정당? 10년도 어렵다 70년 한국 현대정치사에 200여개 정당이 명멸했다. 제1공화국 시기에는 한국민주당, 민주국민당, 자유당, 민주당이 정당정치의 중심이었다. 1963년 1월21일부터 정당 관련 업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맡는데, 지난 55년간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정당은 202개다. 이들 정당의 말소사유를 보면 득표미달 등으로 인한 등록취소가 89개, 신설합당 33개, 흡수합당 19개, 자진해산 21개다. 강제해산은 5개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0년 10월27일 8차 개헌(부칙 제7조 ‘새로운 정치질서 확립을 위해 이 헌법 시행 당시 정당은 해산한다’)으로 인한 정당 해산 4개(민주공화당, 신민당, 민주통일당, 통일사회당), 박근혜 정부 때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해산 결정 1개(통합진보당)다.

중앙선관위 등록·말소일 기준으로, 역대 정당 중에는 5·16 군사쿠데타 세력이 주축인 민주공화당이 1963년부터 1980년까지 17년5개월17일간 존속하며 가장 장수했다. 그다음은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11년6개월20일), 박정희 정권 시절 보수야당인 신민당(11년1개월5일) 순이다. 만년 야당 신세로 이합집산이 잦아 단명했던 민주당 계열과 달리, 민주정의당(9년26일), 민주자유당(7년9개월9일) 등 보수여당은 비교적 당이 오래 지속됐다. 이들의 ‘법통’을 이은 자유한국당은 6일 기준으로 20년2개월10일째 당이 유지되고 있다. 1997년 11월24일 신한국당과 ‘꼬마 민주당’이 신설합당한 한나라당을 거쳐, 지난해 대통령 탄핵으로 사라진 새누리당을 잇는다.

한국 정치의 풍운아인 3김은 정치경력이 길었던 만큼 창당에도 많이 관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민주당(1987), 민주당(1991), 새정치국민회의(1995), 새천년민주당(2000)이 창당할 때 당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1987)에 이어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과 함께 민주자유당(1990) 창당 공동대표였다. 허경영 전 경제공화당 총재도 모두 4개의 정당을 창당했다. 그가 처음 만든 진리평화당은 11년3개월7일간 존속했다. 역대 3위 기록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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