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일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표와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추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을 완료한지 이제 한달 하고 보름이 지났습니다. 당 지지율은 통합 전 장담과 달리 아직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그 사이 안철수 전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에 임명돼 일부 인재를 발표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지만 당은 여전히 침체 분위기인데요. 이런 가운데 안철수, 유승민 두 ‘간판’은 기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요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중진 의원들이 싸우듯 ‘대놓고’ 싸움은 아니고요. 은근하게 그리고 뒤끝있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장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안철수가 인재영입위원장이 될 때
지난달 통합과 동시에 안철수 전 대표는 당대표에서 물러났습니다. 유승민·박주선 ‘투톱’ 체제가 됐죠. 두 당이 합했지만 컨벤션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당 지지율을 올릴 계기도 마땅찮았고요. 3월에 들어서자 ‘안철수 조기 등판론’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3월13일 유승민 대표는 안 전 대표와 만났고 16일 안 전 대표에게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기기로 최고위에서 확정됐습니다. 최고위 의결 뒤 유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백브리핑’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민생특위위원장하고 인재영입위원장 두 가지 중에 뭐 아무거나 본인이 원하는대로 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당내) 지방선거기획단에서는 민생특위위원장으로 모시면 좋겠다는 의견을 얘기했고 제가 민생특위위원장을 할 것이냐고 (안 전 대표의) 의향을 물었는데 본인이 인재영입위원장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얘기해서 그럼 박주선 공동대표와 제가 오늘 결정한 겁니다.”
민생특위위원장을 제안했지만 ‘본인이’ 인재영입위원장을 골랐다는 데 설명의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분 뒤 안 전 대표는 트위터에 이렇게 올렸습니다.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에 답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바른 미래를 위해 전력을 다 하겠습니다. 새 사람을 찾고 숨은 인재를 발굴해 당의 활력을 찾겠습니다. 함께 해주시면 이깁니다. 고맙습니다.”
인재영입위원장 임명이 완료되기 직전, 국민의당 출신 관계자들 사이에선 유 대표 쪽이 안 전 대표를 ‘모시는’ 데 소극적이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통합 반대파와 찬성파로 당이 찢어지면서 안 전 대표는 중재파를 달래기 위한 ‘탕평책’으로 대표직을 내려놨는데 불과 한달 만에 복귀하게 됐는데요. 복귀에 일종의 명분이 필요한데 협조가 원활히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반면 유 대표 쪽에서는 안 전 대표 쪽에서 3월13일 두 사람의 만남을 언론에 ‘흘렸다’고 의심하며 불쾌감을 표출했습니다. 유 대표부터도 기자들과 만나 “단 둘이 봤는데 왜 기사가 났는지 어이없어하는 중이다”고 말했습니다. 바른정당 출신 한 의원은 “통합 논의과정에서부터 국민의당 쪽에서 비슷한 행태가 많았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같은 물 밑 갈등이 백브리핑 속 ‘가시’로 조금씩 드러난 것입니다.
# 유승민이 지방선거 출마를 거절할 때
결국 안 전 대표가 복귀했지만 기대와 달리 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유승민 등판론’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의 서울시장 출마가 점쳐지는 가운데 유 대표까지 ‘투톱’으로 출마해 지방선거 판을 ‘쌍끌이’하라는 요구가 당 안팎에서 나온 겁니다. 국민의당 출신 중에선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고, 바른정당 출신 중에는 하태경 최고위원이 이런 얘길 합니다. 단 하 최고위원은 ‘유승민 서울시장-안철수 대구시장 또는 부산시장’이 맞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25일 일요일 저녁 유승민 대표는 안 위원장과 함께 당 중진 의원들을 만났는데요. 이 자리에서도 유승민 출마론이 제기됐다고 합니다. 다음날인 26일 이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유 대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선 제가 어제 저녁 자리에서 입장을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출마하지 않는다. 당대표로서 제 역할을 다 할 뿐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출마를 얘기해왔던 분들에게 그 발언을 앞으로 좀 하지 마라는 얘기를 어제 분명히 했습니다.”
‘유 대표도 출마하라’는 요구에 거듭 선을 그은 것입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투톱 출마’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아직 출마선언을 하지 않고 있는 안철수 위원장을 향해서도 한 마디를 보탰는데요. 이날 장진영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데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유 대표는 국민의당 출신 장 전 최고위원이 이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것에 대해 “나는 처음 들었다. 아무한테도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얘기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께 제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안 대표님 빨리 좀 결심하시라’고 얘기했는데 (장진영 전 최고위원 등 출마 움직임을 중앙당이) 그걸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안 위원장에게 이미 ‘빠른 결심’을 요구했는데도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 불만을 에둘러 내비친 겁니다. 하지만 이후 안철수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유승민 대표 출마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도록 하겠다”며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안 대표 쪽은 유 대표가 ‘빠른 결심’을 촉구하고 있는 데 대해 “안 위원장은 지금 인재 영입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는데 여기에 ‘혼자 빨리 출마하라, 반등의 기회로 삼겠다’고 촉구할 게 아니라 같이 역할 분담을 하면서 가야 한다. 원맨쇼로 될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월19일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청년이 미래다'라는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하기에 앞서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표에게 국민의당 상징색인 초록색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한 두 사람 출마를 둘러싼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의 출마 또는 불출마를 두고 선거 뒤 책임론이 뒤따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유승민-박주선 공동대표 사이 기싸움도 묘하게 얽혀있는데요. 대북 이슈 등에서 호남 기반과 영남 기반의 두 대표가 온도 차이를 드러내자 당내 이견이 삐져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당 출신의 한 의원은 “안보와 관련해 유승민 대표의 입장은 예상보다 더 보수적인 것 같다. 박주선 대표 스탠스가 적당한 것 같다”고 말한 반면 유 대표와 더 가까운 다른 의원은 “대선 후보인 유승민이 당연히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화학적 융화’가 일어날 때까지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장기적으론 지난 대선에서 3위와 4위를 차지한 야당 후보 둘이 한 정당 소속으로 각자 다음 대선을 대비하면서 신경전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거대 양당 체제를 깨겠다며 손을 잡았지만 중도·보수의 성향에 제3당을 기반으로 한 두 사람이 잠재적 경쟁관계에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1차 전쟁터는 이번 6·13 지방선거인데요. 어떤 결과가 예상되십니까? 선거 뒤엔 두 대선 후보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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