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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의 난’ 2박3일이 보여준 것

등록 2018-05-29 18:28수정 2018-05-29 18:50

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

불출마→출마→불출마 바른미래 롤러코스터
손, ‘유승민 사퇴설’에 새벽 이미 ‘불출마’ 결심
국민:바른, 4:4 기계적 균형만…결합 미진 영향
공천은 전초전…선거 뒤 ‘새 리더십’ 전쟁 예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선대위원장(가운데)이 지난 3일 국회에서 위원장 수락 기자회견을 할 때의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선대위원장(가운데)이 지난 3일 국회에서 위원장 수락 기자회견을 할 때의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바른미래당은 요 며칠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손학규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불출마(23일)→출마(24일)→불출마(25일) 선언은 불과 2박3일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손 위원장이 불출마 의사를 확고히 하며 서울 송파을 국회의원 재선거 공천을 둘러싼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이 2박3일은 합당 100여일을 맞은 바른미래당의 현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이후를 엿볼 수 있는 힌트들도 좀 숨어있습니다.

4대4 기계적 균형

이번 갈등에선 “손학규를 전략공천하자”는 안철수 계와 “박종진 후보로 그대로 가야 한다”는 유승민 계로 편이 정확히 갈렸습니다. 이에 최종 결정을 위해 최고위원회가 가동됐는데요. 최고위는 안철수 계 4명과 유승민 계 4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지난 2월13일 통합한 뒤 각종 기구들에 기계적 균형을 맞춰놨기 때문인데요. 공천관리위원회도 이런 식으로 구성돼있습니다. 갈등이 발생하자 어떻게 됐을까요? 양 쪽 인사들은 4대4로 첨예하게 맞섰고 막판에는 “바른정당 출신 아무개 위원이 설득됐다더라”와 같이 설왕설래가 무성했습니다. 적잖은 시간이 주어졌지만 ‘합의’나 ‘융합’은 없었습니다.

지역위원회 사정도 비슷합니다. 두 당이 합해지다 보니 국민의당 지역위원장과 바른정당 지역위원장 둘이 겹치게 되는 지역이 많았는데요. 다수 지역은 일단 두 지역위원장들의 ‘공동지역위원장’ 체제로 전환됐습니다. 당내에서는 이런 상황이 각종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초반부터 나왔습니다. 재보궐 선거를 둘러싼 이번 갈등은 여기서 파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서울 노원병과 송파을에 바른정당 출신의 이준석, 박종진 지역위원장이 각각 터를 닦아놓고 있었는데 김근식, 손학규 등 국민의당 출신들을 전략공천하려다보니 일이 터진 것입니다.

당 조직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번에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손학규 대 박종진’ 갈등이 한창이던 23일 바른미래당은 ‘박종진 예비후보 출마선언’ 일정과 장소를 휴대전화 문자로 기자들에게 알렸는데요. 공천이 확정되지 않은 예비후보의 일정을 공식적으로 공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공지는 바른정당 출신 실무자가 한 것인데요. 첨예한 갈등 속에 서로 워낙 예민한 분위기였기때문에 ‘당에서 박 후보를 돕는 것이냐’는 반대 쪽의 반발이 예상되기도 했습니다. 당은 곧이어 “실무자의 착오로 당에서 공지됐다. 오해 없길 바란다”는 문자를 뿌리며 수습에 나섰습니다. 결국 이 2박3일을 통해 두 당이 조직 구성에서 기계적 균형을 맞췄지만 화학적 융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현실이 제대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선대위원장이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 송파을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중 시계를 보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손학규 바른미래당 선대위원장이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 송파을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중 시계를 보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사실 후보 등록 마지막날인 25일 아침 최고위 분위기는 손 위원장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의 도중 손 위원장이 돌연 ‘불출마’ 의사를 박주선 대표에게 전화로 전하며 상황이 마무리됐는데요. 손 위원장은 최고위가 열리기 전인 이날 새벽 이미 ‘불출마’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손 위원장으로 공천될 경우 유승민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한 관계자는 “당일 새벽, 이미 약속이 잡혀있던 아침 라디오에서 불출마 의사를 밝힐지 국회 정론관에 서서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할지 고민한 끝에 정론관에 서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침 라디오에서는 손 위원장이 출마한다고 말했다가 불과 2시간여 뒤엔 불출마 선언을 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과정에서 당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안철수 후보와 유승민 대표가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이번 갈등은 지난 6일 안철수·유승민·손학규·박주선의 4인 회동에서 안 후보가 ‘손학규 전략공천’ 카드를 꺼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요. 이후에도 협의를 위해 4인 회동을 추진하려 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다 갈등이 마무리된 뒤인 지난 27일에야 성사됐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바른미래당 통합 주역인 안 후보와 유 대표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집이 세다’는 겁니다. 지난 대선에서 각각 3등과 4등을 한 두 사람은 앞으로도 기싸움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이지 않는 손”?

박종진 후보는 이번에 기자회견과 라디오 출연을 통해 여러차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안철수 후보 뒤에서 누군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그만하라”고 얘기한 것인데요. 이름을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당내에서는 최명길 전 국민의당 의원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최 전 의원은 박종진 후보가 공천된 송파을의 직전 의원입니다. 박주선 대표는 최 전 의원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25일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나와 “그 지역에서 의원직을 잃었던 최명길 전 의원도 현재 분위기를 전하면서 반드시 (박종진이 아닌 다른 인물로) 후보 교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저희 당에 요청해왔다”고 한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바 있지만, 최 전 의원의 성향은 중도·보수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도 최 전 의원은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와의 연대를 내부적으로 주장했는데요. 지난해 12월 의원직을 잃은 뒤 그는 안철수 후보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며 이번 선거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거까지 남은 보름 가량의 시간 동안 안 후보 정책과 기조의 향배를 그의 존재를 통해 어느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지난 17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민생특위12' 출범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지난 17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민생특위12' 출범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새 리더십

유승민 대표는 지방선거 뒤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새 지도부가 꾸려지게 될 텐데요.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여러 후보들이 입에 오르내립니다. 당 대표를 뽑을 게 아니라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동시에 나옵니다. 대표적인 후보로 손 위원장이 거론됩니다. 손학규 위원장은 지난 3일 바른미래당 선대위원장을 수락하면서 “지방선거 뒤 정계 개편”을 언급했고요. 지난 25일 송파을 불출마를 선언하면서는 “지방선거 후 정치개혁”을 얘기했습니다. 출마 여부에 말을 아끼고 있지만 손 위원장이 지방선거 뒤 당 리더십을 맡아 정계 개편을 주도하려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옵니다.

이 밖에 당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김관영, 오신환, 김성식, 하태경, 이언주 의원 등 상대적으로 젊은 의원들이 전면에 서야 한다는 얘기도 의원들 사이에서 나오고요. 호남·영남을 벗어나 수도권 의원이 이를 주도해야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됐든 또 한 차례 세력간 갈등과 신경전이 예고되는 대목인데요. 이번 공천 갈등은 어쩌면 ‘전초전’일지 모르겠습니다. 정계 개편은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야권 전체와 맞물려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옵니다. 한 의원은 “지방선거 뒤 정계 개편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른미래당이 주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방선거 뒤 바른미래당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선거 결과 못지 않게 궁금한 일입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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