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유세차량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임한솔 서울 서대문구 구의원 당선인. 임한솔 당선인 제공
정의당 구의원 당선인이 구의회 예산으로 국외 출장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지역의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에게도 같은 제안을 할 계획이다. 나랏돈으로 가는 갑질·외유성 출장에 대한 비판이 높은 상황에서 막 정치를 시작하려는 기초의원이 신선한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선언의 주인공은 임한솔(37) 서울 서대문 구의원 당선인이다. 그는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외연수 불참’을 “7월1일 임기시작에 앞서 구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우선적인 조처로 꼽았다. 그는 이 결심이 “비단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의식해서만이 아니”라며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임 당선인은 먼저 “나라마다, 도시마다 지나온 역사와 배경, 처한 환경이 모두 다르다”며 “이를 간과한 채 해외의 좋은 사례를 찾아다니기보단, 그 시간에 우리 동네를 좀 더 세밀히 관찰하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더욱 자세히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서대문구에 적합한 지방자치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초연결 시대에 외국 자치단체의 홈페이지나 논문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정보 수집에 문제가 없다는 게 임 당선인의 생각이다. 그는 “보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대부분 관광 일정으로 해외 도시를 수박 겉핥기하듯 둘러보고 오는 것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겠냐”며 “해당 도시의 정책담당자를 구의회 예산으로 초청해 구의원들 앞에서 자세히 설명하게 하고 통역을 통해 듣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이쪽에서 구의원 열다섯 명 가는 것보다 저쪽에서 한 명 오는 것이 비용도 훨씬 절약된다”고도 했다. 구의원들의 집단 국외출장은 비용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직접 현장을 방문해야 하는 지방자치 사례가 있다면 임 당선인은 “저의 개인 사비로 다녀오도록 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제가 받게 될 의정활동비에 이런 비용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09년 진보신당 당직자로 진보정치를 시작한 뒤 정의당 원내대표실 공보국장, 심상정 대선후보 부대변인을 거친 그는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보궐선거에 이어 이번에 당선됐다. 북가좌·남가좌동을 아우르는 마 선거구에서 3번을 도전하면서 그는 주민들의 구의회 불신을 몸으로 체험했다고 한다. “구의회가 뭘하는지 모르겠다, 구의회는 맨날 사고만 치지 않냐, 세금이 아깝다”는 ‘원초적인 분노’였다. 실제로 올해 1월 서대문구 구의원 12명은 하반기에 잡혀있던 6500만원의 비용을 당겨쓰면서 스페인으로 7일간 ‘연수’를 다녀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임 당선인은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처가 반드시 필요했다. 충북도의원들이 물난리에도 해외 다녀오고 오히려 국민들을 훈계하고 비난하는 걸 보면서 이 특권을 내려놓는 게 신뢰 회복을 하는 첫걸음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당선인 자격으로 국외연수 불참을 말하는 게 진정성이 있을 것 같았다”는 그는 “‘저는 다릅니다, 정의당은 다릅니다’라는 게 주민들로서는 잘 믿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민들이 반신반의하면서 찍어줬다고 생각한다. 반신반의를 온전한 믿음으로 만드는 건 지금부터”라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첫 정의당 기초의원으로 기록될 그는 서대문구의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 국회의원 등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국외연수 불참’ 선언에 함께하자고 제안할 계획이다. 정의당 서대문구 지역위원장이기도 한 임 당선인은 “기초의원 몇명의 선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게 발단이 돼 선출직 공직자들이 특권을 내려놓고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정치운동으로 확대되길 바란다”며 “민주당의 우상호·김영호 의원 등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다 만나겠다. 신뢰 받는 계기를 다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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