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18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보다 시스템이 먼저.’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인적 청산 없는 혁신비대위’라는 비판에 “나름의 계획이나 일정이 있다”며 ‘고장난 자동차론’을 꺼내들었다. 당 시스템 개혁이 먼저라는 비유인데, 그러면서도 “인적 청산을 못할 것도 없다”고도 말해 ‘여지’를 남겼다.
20일 경기도 김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당 연찬회 겸 토론회를 뜨겁게 달궜던 ‘인적 청산’ 주제는 사실상 김 비대위원장이 먼저 꺼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비대위 관련 논의를 주재하면서, “지난 한달 동안 비대위원장 하면서 저를 가장 괴롭혔던 문제가 인적 청산에 대한 압박이었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저는 나름의 계획이나 일정을 갖고 있는데, 그와 관련없이 압박이 왔다. 인적 청산을 하지 않으면 혁신이 없고 비대위가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하지만 전 (인적 청산이 없으면 혁신이 없다는 주장과는) 생각이 좀 다르다”면서 ‘고장난 자동차론’을 소개했다.
“지금 우리는 고장난 자동차다. 고장난 자동차를 두고, ‘누가 운전을 했냐’ ‘기사 목을 잘라라’ ‘내보내라’ 당연히 기사의 잘못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를 고치지 않고 아무리 좋은 기사를 영입한다고 해서 차가 잘 갈 수 있을까. 결국은 차를 고치고, 고치고 난 다음에 고쳐가면서 필요하면 새로운 기사를 모시기도 하고 인적인 부분을 고민하게 된다. 급한 것은 차가 고장났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비대위원장은 “고장난 것 중 제일 고장난 것은, 자유한국당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나 가치가 없고 안보, 친기업, 수구, 부패와 연관된 이미지만 있고 새 시대를 향한 비전이나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비대위의 활동이 ‘가치 재정립’에 촛점을 둘 것을 시사했다.
또 ‘잘라내기’ 식의 인적 청산보다는, 인재 유입을 통한 ‘쇄신’에 방점을 찍었다. “(비대위 산하 소위에서 논의중인) 바꿀 수 없는 공천제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인적 풀이 만들어져 공천 제도를 통해 유입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비대위가 추구하는) ‘정책 정당’, ‘가치 정당’을 통해 또다른 인적 쇄신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런 일(인적 청산)을 왜 안하느냐고 하는데, 결기의 문제도 카리스마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일의 선후의 문제고, 가치를 공유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속도가 있고 방향이 있고 경중이 있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저는 비대위가 끝나면 제가 있던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며 “더이상 정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인적 청산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른 특별한 ‘정치적 이익’을 바라고 한 발언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김 비대위원장의 발언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인적 청산’을 포함해, 한달째를 맞은 비대위가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없다는 의원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김 비대위원장은 “인적 청산을 못 할 것도 없다”면서도 “칼잡이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라고 말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특히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일부 의원들은 인적 청산의 ‘방향’을 이전 지도부를 겨냥해 틀었다. 김진태 의원은 “차는 고장난 게 없는데 운전수가 문제”라며 “총선, 탄핵, 대선, 지선 등 그때마다 당을 이끌던 지도부가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박완수 의원은 “비대위가 많이 있었음에도 당 지도자가 바뀌니 소용없었다. 지도자의 한마디가 수십만 당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홍준표 전 대표를 겨눴다.
토론 말미 엄용수 의원은 “국민들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길 원하는데 이대로 넘어가선 안된다. 국민들이 느낄 수 있는 간단한 것이라도, 아픈 작업이라면 (공론을 모을 것이 아니라) 비대위원장의 상식으로서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내가 화살을 맞는다고 해도 감수하겠다”고 촉구했다. 그러자 김 비대위원장은 “카리스마, 리더십, 결기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의 문제”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결정되고 나면 나는 그대로 있는 자리로 돌아간다. 내가 (인적청산을) 못 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시간이 걸릴 것’ 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 일(인적 청산)을 함에 있어서도 민주적 절차가 기본이다. 칼잡이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한두사람 이야기 들어서 하는 것도 안된다. 그래서 시간이 상당히 갈 수 있다. 될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동의를 받아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
결국 인적 청산을 할 것인가, 한다면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청산을 할 것이냐는 정파간 대립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피하면서, “인적 청산은 그 (당 개혁) 뒤에 나올 이야기”라고 피해간 셈이다. 그러나 한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의원들의 질문 가운데는 꼭 인적 청산 문제가 아니라도 당장 당이 국민들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없다는 실질적인 지적도 많았는데, 인적 청산 논쟁을 빌미로 빗겨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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