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일 오전 국회 본회의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상대로 국가재정정보시스템 접속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문재인 정부 업무추진비 폭로 사건이 지난 2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정점으로 고비를 넘겼다. 검찰의 수사 결과, 그리고 감사원의 업무추진비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번 사건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사건의 전말과 성격, 수습 방안 등을 차분히 정리해볼 때가 됐다.
이번 사건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재정정보원이 심재철 의원의 보좌진을 지난달 17일 정보통신망법 및 전자정부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하면서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부의 자료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고 기획재정부와 심재철 의원이 승강이를 벌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1일 검찰이 심재철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사안의 성격이 확 달라졌다. 검찰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야당 탄압’ 주장에 힘이 실렸다.
야당은 나쁘지 않았다. 3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다시 치솟던 시기였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줬다”는 말이 나왔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매우 유감스럽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할 기본적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입장문을 냈다.
심재철 의원과 보좌진의 자료 입수가 불법인지 아닌지는 결국 검찰의 수사 결과와, 기소될 경우 법원의 재판으로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자료 안에 문재인 정부의 비리가 포함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다. 별 내용이 없으면 심재철 의원의 불법성 여부만 쟁점으로 남을 것이다.
특별한 내용이 불거져 나오면 사건의 본질이 그쪽으로 넘어가면서 심재철 의원이 자료를 내려받는 과정에서의 불법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감사원 감사가 남아 있다지만 업무추진비 사용 내용에서 큰 불법이 새로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압수수색 전부터 심재철 의원으로부터 청와대 업무추진비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는 강하게 반발하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심재철 의원이 직접 보도자료를 낸 것은 추석 연휴 직후인 27일과 28일, 그리고 대정부질문을 한 2일이다. 청와대에서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한 내용, 청와대 직원들이 받은 부당한 회의 수당, 부처별로 부당한 업무추진비 집행 내용, 국가 주요 재난 발생 당일 청와대가 술집에서 사용한 업무추진비 등을 문제 삼았다.
심재철 의원은 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보도자료 내용이 사실이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들의 도덕성이 치명상을 입는 것이다.
청와대는 업무추진비 사용 내용에 대해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진실 공방을 벌였다. 회의 수당은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정부의 특성상 새 정부 출범 초기에 월급 대신 수당을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지난달 28일 이례적으로 직접 브리핑에 나섰다.
“국민들이 국민 민의를 잘 대변하고, 정부를 잘되게 견제하라고 여의도로 많이 올려보내 주셨는데 이렇게 늑대소년처럼 지금 세차례에 걸쳐서 하시는 의도가 뭔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모 의원님께서 청와대 비서관에게 회의 참석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했다, 그런 주장을 하셨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단 한번만이라도 점검해보면 확인할 수 있는 그런 허위 사실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늑대소년’이라고 한 표현이 흥미롭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진짜 늑대에게 물려 죽은 ‘양치기 소년’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심재철 의원을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한 셈이다.
청와대는 ‘2017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중 미용업종이 3건 포함돼 부적절하게 쓰였다'는 심재철 의원의 폭로를 반박하는 보도자료도 내놓았다. 평창겨울올림픽 경호업무를 했던 군인·경찰을 위로하기 위해 목욕시설을 이용한 것이고, 의무경찰을 격려하기 위해 치킨, 피자를 보내준 것이라는 등의 설명이었다.
여론은 심재철 의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심재철 의원은 2일 대정부질문에서 마지막으로 반전을 노렸지만, 분위기를 바꾸지 못했다. 대정부질문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심재철 의원이 김동연 부총리에게 완패했다”고 평가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심재철 의원과 보좌진의 행위를 ‘불법’이라고 단정했고 ‘사법당국’이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많은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사게 하는 것은 책임있는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훈계하는 듯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심재철 의원은 제대로 항변도 하지 못하고 말싸움에서 밀렸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9월27일치 <한겨레> ‘왜냐면’에서 지적한 대로, 노회찬 전 의원과 최성진 <한겨레> 기자를 기소하고 유죄로 판결한 검찰과 법원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폭로한 내용의 ‘중차대한 공익성’ 때문이다.
그런데 심재철 의원이 폭로하고 있는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용과 회의 수당은 그 정도로 ‘중차대한 공익성’을 갖고 있다고 아직 보기 어려운 것 같다. 심재철 의원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언론과 기자들은 이번 사건을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건’이 아니라 ‘심재철 의원 사건’으로 부르고 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