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호는 없었다. 1일 오전 8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홀로 하얀색 카니발 차량에서 내렸다. 30분 전 영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였다. 캠프의 조직총괄을 맡은 조정식, 비서실장을 맡은 박홍근, 수석대변인 박찬대, 수행실장 김남국 의원만이 미리 현충원에 도착해 이 지사를 맞았다. 지지자들과 국회의원들로 붐비는 다른 대선주자들과는 다른 ‘조용한 대선 행보’였다.
이 지사는 이날 전직 대통령 묘역이 아닌 무명용사의 탑 앞에서 참배했다. 이 지사는 기자들에게 “세상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며 “그러나 누군가는 이름이라도 남기지만, 누구는 이름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위패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고 말했다. 방명록에는 “선열의 뜻을 이어 전환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가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지사는 시종일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예비후보 상대 ‘국민면접 1탄’ 행사에 참석해서도 ‘친문 후보 단일화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저도 가능하면 연대하고 싶다. 잘 안되긴 하지만”이라고 웃으며 “경쟁에서 다수가 참여해서 실력을 겨루는 데 감안할 수 있는 방식이고, 충분히 이해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사 얘기가 나오자 울컥했다. 이 지사는 국민면접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나 ‘형수 욕설 사건’ 등 도덕성 문제 관련 질문을 받고 “제 부족한 점에 대해 용서 바란다. 죄송하다”며 허리를 90도 숙여 인사했다. 그러면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 지사는 “제가 가족에게 폭언한 건 사실인데,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가본다면 안 그러려고 노력하겠지만, 어떨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7남매 인생을 바쳐 키우신 어머니에게 불 지르겠다고 협박해서 집에도 못 가고, 심지어 어머니를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져서 제가 참기가 어려워서 그런 상황에 이르렀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어 이 지사는 “어머니, 형님이 돌아가셔서 다시 그런 참혹한 현장은 안 생길 것”이라며 “갈등 최초 원인은 가족들의 시정 개입이나 이권 개입을 막다가 생긴 거라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지금 특수과외까지 받으면서 ‘열공’한다고 하는데, 국정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 쉽게 익혀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직은 (검찰총장을 그만둔 지) 100일 넘은 정도니까 좀 더 공부를 하고 채운 다음에 발언을 들어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다만 “과거 얘기를 안 할 순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말을) 많이 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며 윤 전 총장이 출마 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국민을 약탈하려는 부패·무능 세력”으로 규정하는 등 거친 말을 쏟아낸 것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날 오후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향한 이 지사는 경북유교문화회관의 유림서원, 이육사 생가 등을 방문했다. 부모님 산소를 찾은 뒤 2일에는 전남도청에서 ‘경기도-전남 상생발전 공동합의문’ 체결식을 진행한다. 민주당에서 희소한 ‘티케이(TK) 출신 대선주자’임을 드러내면서 영호남을 아우를 수 있는 ‘동서화합형’ 주자라는 걸 강조하려는 행보로 보인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