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과 합의한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입법안을 재론하겠다며 뒤집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하며 단독 처리를 공언했다.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에 반대한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에 따라 국민의힘이 합의안 파기를 시도하면서 여야는 다시 극한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의힘 최고위원회는 25일 오전 국회에서 1시간30분여간의 논의 끝에 검찰 수사권 분리 합의안에 대해 재논의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지 3일 만에 이를 뒤집은 것이다. 합의문에 서명했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소수당의 원내대표로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중재안을 마련한 것은 차악의 선택이었다”면서도 “공직자 및 선거 범죄에 대해서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국민의힘의 입장 선회는 검찰 수사권 박탈에 대한 윤 당선자의 부정적 견해 때문이다. 전날 ‘합의안 재론’을 요구했던 이준석 대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통화하며 권 원내대표가 윤 당선자와 충분한 교감 없이 합의문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른바 ‘검수완박’ 논의에 거리를 뒀던 윤 당선자의 메시지도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이날도 장제원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은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헌법 정신을 크게 위배하는 것이고 국가나 정부가 헌법정신을 지켜야 할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검찰총장 사퇴할 때 말씀하신 것과 생각이 전혀 변함 없다”고 전했다. 배현진 당선자 대변인도 “민주당도 국민 대다수가 깊은 우려를 하는 것을 알고, 국민이 염려하는 가운데 입법 독주를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는 윤 당선자의 발언을 전했다. 전날 밤까지도 합의안 재론 여부를 놓고 이준석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충돌했지만 윤 당선자의 발언으로 합의안 파기 쪽으로 국민의힘 ‘당론’이 정리된 것이다.
국민의힘의 합의안 파기에 민주당은 강력 반발하며 애초 합의안을 강행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윤석열 인수위와 국민의힘의 오락가락 말 바꾸기는 국회 합의를 모독하고 여야 협치를 부정하는 도발”이라며 “민주당은 여야가 합의한 대로 금주 법사위에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조문 작업을 끝내고 28일 또는 29일에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중재안을 단독으로 입법하려면 속전속결이 필요하다. 국회 법제사법위 법안심사소위는 박병석 의장의 중재로 마련된 새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심사부터 다시 착수해야 한다. 안건조정위원회와 전체회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이번 주 안에 마무리해야 다음달 3일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공포가 가능하다. 시간이 촉박해 물리적으로 이번주 국회 본회의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
국민의힘이 민주당과의 합의를 파기함에 따라 윤석열 정부 출범 전 정국은 급랭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합의 파기를 ‘협치 포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장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부터 험로가 예상된다. 특히 윤 당선자의 의중에 따라 여야 합의가 뒤집어진 건 ‘제왕적 대통령 당선자의 의회주의 무시’라는 비판이 나온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한동훈 후보자가 에드벌룬을 띄우고 인수위가 받은 뒤 당선자가 한 마디 거드니까 당에서 뒤집는 수순 자체가 임기 초부터 통합과 협치와는 멀어지고 대결 국면을 자초하는 상황”이라며 “당을 청와대 출장소 정도로 보고 있다는 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여야 합의에 당선자가 비판하는 입장을 내는 건 의회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며 윤 당선자 발언 뒤 당이 (합의를) 뒤집는 모양새는 국회의 위상을 스스로 실추시킬 뿐 아니라 원내의 역할까지 무력화하는 좋지 않은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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