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의원(맨왼쪽)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입법안과 관련해 박병석 국회의장과 면담하기 위해 의장 실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중재안에 대한 국민의힘의 재논의 요구를 일축하고 사실상 단독 처리 수순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법안 통과라는 ‘입법 시간표’를 고려했을 때 더는 미룰 수 없는데다, 국민의힘 쪽에서 합의를 번복한 만큼 단독 처리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25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중재안에 대한 법안 심사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22일 여야가 합의한 대로 중재안의 4월 임시국회 안 처리를 위한 입법 절차를 개시한 것이다. 애초 여야는 이날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을 바탕으로 각 당의 초안을 만들어 온 뒤 법안 성안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국민의힘이 합의를 뒤집으면서 민주당의 단독 법안 처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새달 3일로 예정된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 중재안을 상정하려면 늦어도 오는 28일 또는 29일에는 본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26일 법사위 절차가 마무리될 경우 27일께 본회의를 여는 방안도 거론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주중 본회의 소집에 대비해 소속 의원들에게 국회 주변에 머물도록 대기령을 내렸다.
관건은 박병석 의장의 협조 여부다. 중재안이 법사위에서 민주당 주도 아래 속전속결로 의결되더라도, 다음 단계인 본회의 표결로 넘어가려면 박 의장의 동의가 필요하다.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도 박 의장이 ‘쪼개기 임시국회’를 허용해야 무력화할 수 있다. 민주당은 합의를 번복한 책임이 야당에 있는 만큼, 박 의장이 민주당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출연해 “박 의장도 국민의힘이 약속을 어기고 합의사항을 파기한다면 민주당 입장에서 이 문제를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의장의 심중에는 그런 뜻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빠듯한 일정을 고려해 박 의장이 중재안을 직권상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의장은 이날 국민의힘의 여야 합의 파기와 관련해 “말을 아끼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발의했던 ‘원안’이 아닌 국회의장 중재안을 법안 심사대에 올리기로 했다. 여야 합의 내용을 존중해 단독 처리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그럴 바에야 원안으로 처리하라’는 지지자들의 요구가 있다. 또 (검찰에 남은) 2개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한국형 에프비아이(FBI)를 만들어서 이관하도록 합의를 했는데, 그것을 담보하기 위한 부칙을 강제 조항으로 넣자는 소속 의원들, 지지자들의 요구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의 중재, 합의라는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 얘기를 담고 싶어도 안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야 합의가 어그러진 틈을 타 ‘원안 처리’를 요구하는 당내 강경 목소리가 커진 것은 지도부에 부담이다. 민주당 의원 21명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이 먼저 중재안 합의를 깬 만큼, 의장 중재안을 수용한 민주당의 원안대로 검찰정상화법 입법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문에는 검찰개혁 강경파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뿐만 아니라 국회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 등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 22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소수에 그쳤던 중재안 반대 목소리가 한층 커진 모습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강성파 의원들에게 목소리를 키워줄 빌미를 주게 돼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심우삼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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