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가 될 수 없거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해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뒤 1년3개월 동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발이 묶여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입법의 발목을 잡고 있는 법사위에 서한을 보내는 방식으로 조속한 처리를 공식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은 “(전반기 국회가) 마무리되기 전에 위원장으로서 법사위에 정식으로 (의료법 개정안) 이 문제를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1년 넘게 법사위에 발이 묶인 의료법 개정안은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9월28일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거나 의료인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변호사·공인회계사·변리사·세무사 등의 전문직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자격을 잃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행 의료법에 담긴 의사 면허 취소 사유는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 △면허 대여 △허위진단서 작성 및 진료비 부당 청구 등 특정 경우에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살인이나 성범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 성폭력 범죄자 직업별 현황 자료를 보면, 전문직 성폭력 범죄자 5569명 중 의사가 602명(10.8%)으로 가장 많았고 예술인 495명, 종교가 477명, 교수 171명, 언론인 82명, 변호사 50명 차례였다.
의료법 개정안은 ‘성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으로 주목 받았고 지난해 2월19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돼 같은해 2월26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당시 법사위 회의록을 보면, 민주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불법촬영과 성폭력, 진료 중 강제추행 등으로 유죄를 받았음에도 자격정지 1개월에 그친 사례를 거론하며 “국민들이 보기에 이런 사람들 중에 많은 숫자가 치료 행위에 복귀했기 때문”에 개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했고, 전체회의에 참석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 의견에 거듭 동의했다. 하지만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직무와 연관성이 없는 범죄를 가지고 의사 면허를 취소하는 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고, 헌법 가치의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법안 통과에 반대했다. “특정 직업군을 타 직종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등 형평성에 반하는 과잉규제”라는 대한의사협회의 반발과 내용이 같았다. 이에 당시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였던 김도읍 의원은 “전체회의에 계류하면서 조문을 손볼 게 있으면 조문 정리를 좀 해서 다음 상임위 때 적당한 시기를 봐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법사위는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의료법 개정안을 추가 논의하지 않았다.
법사위의 ‘심사 지연’에 의료법 개정안 발의자인 강병원 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상임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이 법사위원 한두 사람의 논리도 없는 반대에 막혀서 우리 상임위가 모욕을 당하는 게 446일째”라며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법사위가 상임위에서 회부한 법안에 대해 이유 없이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았을 경우 해당 상임위 위원장이 여야 간사와 협의해 국회의장에게 법안의 본회의 부의를 서면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국회법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의가 제기되면 상임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여야가 간호사 처우 개선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을 놓고 충돌하고, 민주당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전체회의에 불참하면서 부의 요구는 좌절됐다. 결국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이 법사위에 의료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의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여야 법사위 간사들은 의료법 심사를 약속했다.
법사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보건복지위에서 위원장 공식 서한이 접수되면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인 유상범 의원과 협의해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도 “개정안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무조건 면허 취소를 규정하고 있어서 음주운전을 해도 무조건 면허 취소가 되는 등 범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며 “다른 현안이 많아서 이후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는데 보건복지위원장 공식 서한이 오면 재논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법 개정안은) 상식적인 법안인데 의사협회에서 내용을 대폭 후퇴시켜야 한다는 의견서를 내고 반발하면서 법사위가 의사 눈치를 보며 1년 3개월 동안 법안을 계류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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