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 겸 총괄선대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3·9 대통령 선거 연장전으로 치러진 6·1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다.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주당은 광주·전남·전북·제주 네 곳, 그리고 최대 승부처였던 경기에서 겨우 이겼다. 2018년 민주당이 이겼던 서울·인천, 부산·울산·경남, 대전·세종·충남·충북, 그리고 강원까지 국민의힘으로 넘어갔다. 거의 천지개벽 수준이다.
인천·세종은 바로 직전 전국 선거 3·9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이겼던 곳이다. 그런데도 졌다. 대선에서 5.32%포인트 차이로 이겼던 경기의 격차는 겨우 0.14%포인트로 좁혀졌다. 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패배는 3·9 대선 패배로 어느 정도는 예고된 일이었다. 대통령 선거 84일 뒤, 대통령 취임 22일 뒤에 전국 선거가 치러진 전례가 없다. 애초부터 대선 여파를 피하기 어려웠다.
민주당 성적표가 ‘패배’에서 ‘참패’로 바뀐 이유는 송영길 전 대표와 이재명 전 대선후보 때문이다. 대선 패배 뒤 자숙해야 할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이재명 전 후보도 당 안팎의 만류를 뿌리치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두 사람의 출마는 6·1 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각인시키는 악재로 작용했다. 민주당 스스로 대선 불복 프레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꼴이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여러 명분을 내세웠지만 대선 불복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축구로 치면 자책골이었다. 열성 지지층 결집 효과보다 느슨한 지지층과 중도층 이탈 효과가 훨씬 더 컸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참패의 이유를 물었다. 대략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투표율이 뚝 떨어진 것을 보고 개표 전에 참패할 것을 알았다.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 가운데 상당수가 투표를 포기했다. 명분 싸움에서 우리가 크게 밀렸다.”
“대선 0.73%포인트 패배가 독약이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아큐정전에 나오는 정신승리법이다. 현실 세계에서 통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사필귀정이다. 할 말이 없다.”
하긴 모든 선거는 심판 선거다. 2018년 지방선거는 북-미 정상회담을 ‘위장평화 쇼’라고 비난한 홍준표 대표의 자유한국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는 코로나 위기를 선거에 끌어들인 황교안 대표의 미래통합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번 선거는 대선 패배에 승복하지 않고 고개를 쳐든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우리 유권자들은 오만한 정치인과 정당을 너무너무 싫어한다.
선거 패배에는 후과가 따른다.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 패배와 지방선거 패배라는 두 개의 쓰나미를 한꺼번에 맞게 됐다.
당분간 계파 갈등과 책임 공방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당이 쉽게 깨질 것 같지도 않다. 의원들이 집단 탈당을 할 명분도, 힘도 없기 때문이다.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사퇴는 당연한 수순이다. 민주당은 다음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할 때까지 또다시 비대위 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전당대회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민주당에서 이번 선거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다. “혼자 살겠다고 민주당 다 죽였다”는 비판은 그에게 낙인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할까?
그는 당선 소감에서 “엄중한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면서도 “좀 더 혁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대단하다. 그의 성정으로 미루어 내친김에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정면돌파 카드를 선택할 수도 있겠다. 통할까?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이재명 전 후보와 민주당 의원들, 그리고 민주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과연 민주당을 혁신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가졌는지 아닌지다. 혁신하지 못하면 민주당은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통령 선거도 패할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대선 이후 지금까지 낮은 지지도로 고전했지만, 지방선거 압승으로 임기 초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됐다.
지금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진짜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은 입증된 바 없다. 그러나 ‘손님 실수’에 의한 반사이익도 실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복’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방선거 직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사단’ 출신 검찰 주요 간부들이 주도하는 정치인 사정이 시작될 수 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등이 사정 국면을 활용해 민주당 의원들을 빼내는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잘 될까? 아차 하면 사달이 난다.
국민의힘 내부적으로는 다음 대통령 후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 안철수 의원 등이 유력한 후보군이다.
승리의 흥분과 패배의 진통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여야가 맞닥뜨리게 될 당면 과제가 있다.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다.
늦어도 7월 17일 제헌절까지는 국회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을 선출해야 한다. 국회가 없으면 윤석열 정부, 윤석열 행정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문제는 법사위원장이다. 지금으로서는 여야 어느 쪽도 법사위원장을 양보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이 난제를 풀 수 있을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