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부산 후보자들이 지난 1일 오후 부산 수영구 부산시당에서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8회 6·1 지방선거에서 부산에 역대급 보수 바람이 몰아쳐 더불어민주당이 전멸하고 8년 만에 부산시교육감마저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되면서 패배를 자초한 부산 민주당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일 새벽 6·1 지방선거 개표 결과, 부산은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4년 전 7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것을 빼고는 1995년(1회) 지방선거가 부활하고 2014년(6회)까지 국민의힘이 압승을 하기는 했으나 이번 지방선거는 과거와는 또 달랐다.
부산시장 선거 득표율을 보면, 박형준 국민의힘 당선자가 66.36%를 득표하며 역대 최다 득표율 기록을 갈아치웠다. 앞선 부산시장 당선자들의 득표율은 1회 문정수(민주자유당) 51.4%(1995년), 2회 안상영(한나라당) 45.14%(1998년), 3회 안상영(한나라당) 63.76%(2002년), 4회 허남식(한나라당) 65.54%(2006년), 5회 허남식(한나라당) 55.42%(2010년), 6회 서병수(새누리당) 50.65%(2014년), 7회 오거돈(민주당) 55.23%(2018년)였다.
부산의 16개 기초단체장(구청장 15명과 기장군수) 선거는 1995년 지방선거가 부활하고 27년 만에 국민의힘이 처음으로 싹쓸이했다. 이전에는 무소속 당선자가 1명 이상 나왔으나 이번 지방선거에선 3선을 하고 물러나는 오규석 군수가 불출마한 기장군에서 12년 만에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서 싹쓸이가 가능했다.
지난 1일 부산 사상구 괘법동 제3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기에 앞서 본인 확인 절차를 밟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23년 동안 한 명의 기초단체장을 배출하지 못했다가 4년 전 기초단체장 13명(81.2%)을 한꺼번에 당선시켰던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선 다시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낙마한 2명을 뺀 민주당 현역 구청장 11명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읍소했지만 국민의힘의 거센 바람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김철훈 영도구청만 한 자릿수(7%) 격차이고 나머지는 두 자릿수 격차로 패배했다.
부산시의회의 시계도 국민의힘이 8년 전으로 되돌렸다. 부산시의회는 지역구 42석과 비례대표 5석 등 47석인데 지역구 42석은 국민의힘이 모두 차지했다. 민주당은 8년 전인 2014년까지 지역구 시의원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가 4년 전 38석(90.47%)을 한꺼번에 차지했으나 이번 지방선거에선 한 석도 지키지 못했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율은 국민의힘 63%, 민주당 33.3%여서 비례대표 5석 가운데 국민의힘이 3석을 차지했다. 따라서 부산시의원 전체 47석 가운데 국민의힘이 45석(95.7%)을 가져갔다.
부산시교육감도 보수의 강풍을 비껴가지 못했다. 3선을 노리던 진보 성향의 김석준 교육감(49.17%)이 개표 중반까지 앞서다가 보수 성향의 하윤수 당선자(50.82%)에게 추격을 허용해 1.65%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이번 지방선거 성적표를 보면 지역구도 타파를 외쳤던 노무현·문재인 두 전직 대통령의 외침에 힘입어 민주당이 5석을 건졌던 2016년 국회의원선거부터 부산이 서서히 보수 텃밭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오히려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보수의 지형이 더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선에 성공한 박형준 부산시장이 2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당선증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는 대선이 끝나고 3개월 뒤이자 대통령 취임 한달여만에 치러진 탓에 윤석열 정부 힘 실어주기 여론이 작동한 결과라는 것에 부산 여야가 입을 모은다. 4년 전 집권 2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 힘 실어주기 바람이 불어 민주당이 부산을 넘어 전국에서 압승한 것과 같은 이유다.
민주당에 불리한 전국적 지형 외에도 부산 민주당의 헛발질도 참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시작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이었다. 그는 2020년 4월 직원 성추행을 시인하고 사퇴하면서 부산시민이 지방선거가 부활하고 23년 만에 민주당에 준 기회를 걷어찼다. 민주당에 실망한 부산시민들은 지난해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에게 62.67%, 이번 지방선거에선 3.69%포인트 더 많은 66.36%의 표를 밀어줬다.
낮은 투표율은 민주당에 불리했다. 민주당 바람이 불었던 4년 전엔 58.8%였으나 이번엔 49.1%로 9.7%포인트 낮았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대선 패배에 실망한 민주당 지지층 일부가 지방선거 투표장으로 가지 않은 것이다. 진시원 부산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는 “부산 투표율은 전국 평균(50.9%)에 미치지 못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번에도 패배할 것으로 생각했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또 이길 것으로 여겼다. 이런 구도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들의 결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인 역량 부족이 이번 지방선거 패배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4년 전 벼락 당선된 대다수 민주당 소속 부산 기초단체장과 부산시의원들은 열심히는 했으나 정치·행정경험이 없거나 적어서 헛발질했다. 지난 4년 동안 경험을 쌓기 위해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고 하기엔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너무 참담했다.
민주당 지방정권과 민주당이 장악한 부산시의회의 전략적 연대도 부족했다. 젊은 초선 민주당 부산시의원들은 의욕이 앞서고 선명성을 내세우려 오거돈 지방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부산시의회가 2018년 10월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장 임명 전 검증위원회(인사청문회)를 도입하면서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을 낙마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오 시장은 부산시장 민주당 경선에 나섰다가 자신을 지지하며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을 부산교통공사 사장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민주당 부산시의원들은 엘시티 사업시행자로부터 명절 선물을 여러 차례 받았다는 이유로 사퇴를 촉구했다. 당시 정 전 행정부시장은 “명절 때 나도 모르게 많은 곳에서 선물을 보내오는데 내가 일일이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민주당이 장악한 부산시의회는 부적격 의견을 냈다. 이에 정 전 행정부시장은 자진 사퇴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당시 부산시청 간부들은 “민주당 시의원들이 국민의힘 시의원들보다 더 힘들게 한다”고 토로했다.
민주당 부산시의원들은 초선이 대다수이다 보니 컨트롤타워(지휘부)의 권위가 제대로 서지 않아 우왕좌왕했고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힘 있는 자리를 두고는 티격태격해 부산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윤수 부산교육감 후보가 2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선거캠프에서 당선 축하 화환을 목에 걸고 두손을 번쩍 들고 있다. 연합뉴스
도덕성에서도 국민의힘보다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부산 기초단체장 13명 가운데 2명은 공직선거법(중구청장)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정치자금법 위반(사상구청장)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 중도 퇴진했다. 또 부산시의원 1명은 2020년 8월 식당에서 여성 종업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기소되기 전 민주당 부산시당은 그를 당적에서 제명했다. 하지만 부산시의회는 본회의를 열어 제명 찬반 투표를 했는데 민주당 시의원들이 무더기로 반대표를 던져 제명되지 않았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의 참패를 선거법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박재율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는 “부산에서 거대 양당이 승자와 패자를 번갈아 하는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승자 독식 구조인 선거제도의 폐해다.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 다양한 소수의 주민 의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시원 교수는 “2020년 총선 때부터 정당 투표율 등을 살펴보면 부산 민심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그렇게 나타났다. 민주당은 그런 신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부산 민심은 보수로 돌아섰다. 앞으로 가장 큰 변수는 윤석열 정부다. 결국 중앙 정부의 문제라는 말이다. 윤 정부의 정책 실패 등이 나타나면 민주당에 다시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광수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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