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체육관에 마련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소에서 관계자들이 개표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을 더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37살 여성 김아무개씨는 2022년 6월1일 치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처음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다. 김씨는 호남 출신 이주민 가정의 2세대로 이전에는 ‘우리 민주당’이라 부를 정도로 더불어민주당에 강한 정당 일체감이 있었다. 3월 대통령선거 때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김씨는 “민주당이 이전처럼 미래에 필요한 가치를 생산하는 정당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던 민주당의 존재는 이제 사라진 것 같다”고 씁쓸한 어조로 그는 덧붙였다.
경기 대선·광역비례 득표율 역전, 광주광역시 투표율 37.7%
이번 지방선거는 2021년 4월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빠르게 진행된 정치구조 변동의 최종 결과다. 핵심은 2016~2017년 형성된 강력한 민주당 지지 연합의 붕괴다. 김씨 같은 이들이 만들어낸 심층적인 ‘표밭’의 변화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경기도는 이를 잘 보여주는 지역이다. 정당 지지를 보여주는 경기도 광역의원비례대표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50.12%, 민주당은 45.42%를 얻었다. 3월 대선에서 경기도 득표율은 거꾸로 국민의힘 45.62%, 민주당 50.94%였다. 득표율 역전의 직접적 원인은 민주당 지지자의 투표 불참이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443만 표(이재명 후보 경기도 득표수), 지방선거에서 261만 표(경기도 광역의원비례대표 민주당 득표수)를 얻었다. 감소폭은 182만 표다. 국민의힘의 감소폭은 109만 표(득표수 288만 표)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경기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전라도·충청도 이주민 덕분이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가 2022년 4월 한국조사협회 세미나에서 공개한 자료(한국갤럽의 2022년 인천·경기 유권자 1892명 조사결과에서 재인용)를 보면 대선 당시 인천·경기 유권자 중 원적지가 ‘광주·전라’인 사람은 19.9%, ‘대전·충청’인 사람은 18.3%였다.(표1 참조) 그리고 수도권 유권자 중 광주·전라 출신은 71%, 대전·충청 출신은 47%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2022년 수도권 유권자 1261명 조사결과). 인천·경기 출신 중 이 후보 지지자는 40%에 불과했다. 이들 이주민 집단은 1967년 서울시가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고 거주민을 내쫓으면서 만들어진 도시인 성남시나 1978년 조성을 시작해 서울의 중소 도금·피혁·섬유·염색공장이 옮겨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 등에 터 잡은 이들이다. 중하층 블루칼라 또는 영세자영업자라는 경제적 지위는 이들을 강고한 민주당 지지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들은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광주광역시 투표율이 37.7%로 전국 평균 대비 13.2%포인트 낮은 압도적 꼴찌였다는 사실이다. 지역 내 선거 경쟁이 없어 썰렁한 분위기였다는 게 일차적 원인이지만, 민주당에 실망한 여론이 적잖이 반영된 결과다. 광주 투표율은 2008년 총선에서도 전국 최저(42.4%)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경기도 내 호남 이주민이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돌아선 민주 지지자 16%는 국민의힘, 13%는 무당파
아예 국민의힘 지지로 돌아선 이주민이나 그 자녀들도 상당하다. 경기 오산시에서 광역의원으로 출마했다 99표(0.29%포인트) 차이로 낙선한 김지혜 국민의힘 후보는 “충청도 이주민은 민주당과 저희 당(국민의힘) 지지가 절반씩 갈렸는데, 이번에는 저희 당으로 70% 정도가 넘어오셨다”고 말했다. 호남계 이주민이 많은 경기 남양주시의 경우 주광덕 국민의힘 후보(53.44%)가 최민희 민주당 후보(46.55%)를 상대로 압승했다. 주광덕 후보 캠프에는 호남향우회 고위 간부나 민주당계 조직책이 상당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리서치디자이너는 <동향과 전망> 2022년 여름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민주당 이탈자들을 분석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사람 중 38%가 이번 대선에서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일보·한국리서치 대선 인식조사 중 2020년 민주당을 지지했던 907명을 대상으로 2022년 2월 재조사). 16%는 국민의힘, 10%는 다른 정당 지지로 돌아섰다. 13%는 무당파가 됐다.(표2 참조)
민주당 이탈 확률은 중도(34%), 보수(40%) 성향이 진보(16%) 성향의 두 배였다(시사인·한국리서치 대선 인식조사 중 869명 대상으로 2022년 3월 실시). 정 디자이너는 “문재인 전 대통령 호감도와 정권심판론에 대한 동의 여부가 지지 이탈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이탈자가 많은 지역은 경기도와 인천이 꼽혔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은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소득이 낮을수록 뚜렷하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의 ‘대선 패널 2차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가장 높은 소득 계층은 월 600만~700만원(61.7%)이었다. 월 500만원 미만 가계는 소득이 적을수록 이 후보 지지율이 낮았다. 민주당 이탈층의 지리적 분포와 계층적 특징이 밀접하게 연관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주당의 대규모 패배에는 어김없이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의 이탈이 있었다. 2013년 민주통합당의 대선 평가 보고서는 저소득층의 민주당 지지가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각각 45.4%, 55.6%였는데 2012년에는 41.1%로 급락했다고 지적했다. 거꾸로 대규모 승리는 이들의 지지 때문에 가능했다. 블루칼라, 자영업자, 주부들이 지지 연합에 유입된 2016년 총선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대전에서 국민의힘 주요 후보들이 전세 세입자로 살면서 현지인 행세를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이나 세종시에 아파트를 소유한 외지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민주당 의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병석(서구갑), 황운하(중구) 의원은 각각 서울 서초구와 강동구에도, 장철민(동구) 의원은 세종시에만 아파트를 갖고 있다. 가난한 호남·충청 이주민의 정당에서 서울 마포·용산·성동구에 사는 상위 중산층의 정당으로 정체성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정당인 양하려는 민주당의 모순을 보여주는 사례다. 민주당의 앞날이 험난해 보이는 건 ‘구조적 스윙보터’를 좀처럼 다시 끌어당기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