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7일 경북 울릉군 사동항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0일 ‘우군’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비대위 전환으로 ‘강제 해임’된 이 대표가 자신은 물론 집권 여당 지도부의 운명을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며, 어느 한쪽이 치명상을 입게 되는 이른바 ‘데스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재판장 황정수)에 당의 비대위 전환 과정 등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전자로 제출했다. 상대는 국민의힘과 주호영 비대위원장이다. 국민의힘이 전날 의원총회와 전국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지만, 이 대표는 비대위 전환 과정에서 이미 사퇴를 선언한 최고위원이 최고위 표결에 참여하는 등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강행한 건, 정미경·김용태 최고위원과 한기호 사무총장, 오세훈 서울시장, 박민영 대변인 등 자신의 우군이었던 당내 인사들이 ‘당의 혼란과 분열 상황 수습’이 우선이라며 차례로 돌아선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이준석 키즈’로 꼽혔던 박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의 곁에서 직접 쓴소리를 하면서 국정을 뒷받침해보려 한다”며 용산 대통령실에서 청년대변인으로 근무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자신이 직접 전면전에 나서는 것 말고는, 자신을 해임한 당의 결정을 뒤집을 카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이런 승부수를 두고, 가처분 신청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당 안에선 이 대표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판사 출신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사법부가 정당의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에 제동을 걸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경우, 이 대표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당 대표가 소속 정당의 의사결정을 뒤집기 위해 법적 공방을 벌이는 등 내분을 일으켰다는 비판 속에, 설 자리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도, 이 대표의 대표직 복귀 길이 열리겠지만 당은 또다시 지도부 체제를 원점에서 논의해야 하는 불안한 체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박민영 대변인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심정적으로는 이 대표가 이해되지만,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다시 돌아와야 될 집인데 (법적 투쟁으로) 그 집을 자꾸 때려부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심문기일은 오는 17일로 잡혔다. 국민의힘 쪽에선 당 법률지원단을 통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적어도 이 전까지는 이 대표가 가처분 신청을 철회하도록 설득해 ‘확전’은 막자는 기류도 감지된다. 주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는 (이 대표를) 다각도로 접촉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