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에서 당원들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민의힘과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 당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뒤 시작된 전쟁은 이미 두달째로 접어들었다. 지난달 26일 법원의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일부 인용으로 이 전 대표가 ‘1차전 승리’를 거뒀지만, 국민의힘이 곧바로 당헌·당규를 개정하며 ‘두번째 비대위’로 반격에 나서면서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당내 세력 기반이 적은 이 전 대표는 별다른 지원 사격 없이 홀로 전쟁을 감당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오는 14일로 예정된 ‘2차 전투’(추가 가처분에 대한 법원 심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겠노라고 벼르고 있지만, 당 안에선 승패와 상관 없이 이 전 대표가 당장 당으로 복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정진석 국회 부의장을 새 비대위원장으로 세우며, ‘이준석 없는 국민의힘’이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8일 권성동 원내대표까지 물러나면서, ‘정진석호 비대위’는 차기 전당대회를 앞둔 관리형 비대위 역할을 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의원들의 관심은 차기 원내대표 선거를 넘어 차기 당대표 선거로 치닫고 있다.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이 전 대표도 마냥 이 흐름에서 빗겨나 있을 수만은 없다. 차기 지도부 선거에서 본인과 뜻을 같이 하는 대표단이 들어서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당내 분위기는 녹록지 않다.
애초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해온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쪽에선 정작 뚜렷한 당 대표 후보군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유력한 당대표 후보인 안철수·김기현 의원을 대상으로 ‘간보기’가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어느 한 명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구도는 형성되지 않고 있다. 2024년에 치러질 총선까지 안정적으로 당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윤심’을 반영해줄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이 전 대표도 본인의 세력 구축에 힘을 보태줄 새 지도부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비대위 재탕’ 등 당 지도부의 행보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놨던 의원들도 새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이후로는 공개적 비판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당대회나 원내대표 선거에 ‘비윤’(비윤석열) 후보로 전면에 나서는 것은 위험부담이 훨씬 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난 의총 뒤에 초·재선 의원들이 새 비대위 체제에 반대하는 중진들을 겨냥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을 다 봤는데 누가 함부로 선거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총 115석인 국민의힘에서 초선(63명)과 재선(21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73%(84명)다. 차기 공천에 민감한 초·재선들이 ‘윤심’에 목매는 분위기 속에서 ‘비윤 후보’로 나서선 선거 승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순간, 그 후보는 도리어 ‘윤석열 정부 반대자’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 전 대표는 이제 윤석열 정부의 적대 세력이 돼버렸다. 최고위원 선거 정도라면 몰라도, 당대표 선거에선 이 전 대표가 도와주는 후보는 무조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가 현재 특정 인물을 띄우기보다 ‘윤핵관’을 주로 공략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지난달 27일부터 대구·경북(TK) 지역에 머물며 ‘티케이 적통’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장 당내에서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모으기보다는 당원들을 중심으로 지지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젊은층이나 수도권 일부의 동정 여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전 대표에게 티케이까지 호의적인 여론이 생긴다면 당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존립 기반이 생기는 것”이라며 “그럼 누가 뭐라고 해도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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