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의 소환조사에 불출석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포토라인이 표시돼 있다. 이 대표는 하루 전 검찰에 서면조사서를 제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관해 소명해 이날 출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어떤 직업이든 오래 종사한 사람의 성격은 그 직업 고유의 특징을 닮아갑니다. 기자를 오래 하면 모든 사안을 “기사 되냐 안 되냐”로 판단합니다. 오랫동안 학생을 가르친 교사나 교수는 자꾸 남들을 가르치려 듭니다. 검사를 오래 하면 사람을 잠재적 피의자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럴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경찰이 ‘성남에프시(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대표의 ‘제3자 뇌물 공여’ 혐의가 인정된다며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두 사건 모두 이재명 대표의 부패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법리상 유죄일 수는 있어도 정치를 그만둬야 할 정도의 부패 범죄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수사 내용을 보면 이재명 대표는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상언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지난 9월8일치 신문에 그런 취지로 ‘결국 이재명 대표 돈 문제’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저는 이상언 논설위원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경찰과 검찰이 지금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고 기소하듯 정치인들을 수사하고 기소하면 앞으로 거의 모든 정치인이 선거법 위반, 배임, 제3자 뇌물공여, 직권남용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정치인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과연 바람직한 세상일까요? 정의로운 세상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디제이 비자금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 후보의 불법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고 검찰에 고발한 사건입니다. 검찰은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했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이회창 세 사람이 기록으로 남긴 사건의 전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비자금 의혹의 실체에 대한 시각이 엇갈립니다. 구로사와 아키로 감독의 영화 <라쇼몽>처럼 말입니다. 세 사람의 자서전과 회고록에서 관련 대목을 발췌했습니다.
김대중 자서전(2011년)
“10월7일, 여권에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터뜨렸다. 후보로 선출된 뒤에도 이회창씨의 지지율이 반등할 기미가 없자 국면 전환을 노린 승부수를 준비한 것이었다. 강삼재 사무총장이 총대를 멨지만 사실은 이회창 후보가 개입한 여권의 공작이었다. 강 총장은 회견을 통해 내가 670억원의 비자금을 관리해 왔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0월10일,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0개 기업으로부터 134억원을 받았다고 추가로 발표했다. 이번에는 이사철 대변인이 나섰다.”
“신한국당은 10월1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기어이 ‘비자금’을 추가로 ‘폭로’했다. 일가, 친인척, 아태평화재단 관계자 등 40여명의 명의로 10년간 342개 계좌에 378억원의 비자금을 분산 관리해 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정형근, 홍준표 의원 등을 동원했다. 신한국당은 나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조세 포탈 혐의와 무고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그런데 참으로 의로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김태정 검찰총장의 결단이었다. 그는 현명하고 용기가 있었다. 10월21일 김 총장은 나에 대한 비자금 의혹 고발 사건 수사를 15대 대통령 선거 이후로 유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선 이후) 수사 결과 비자금 사건은 완전한 조작이었다. 관계 기관을 통해 죽은 계좌들을 모두 수집하여 열거한 것에 불과했다.”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2001년)
“이회창씨가 김대중씨의 비자금을 폭로하고 검찰의 수사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일단 김대중씨의 부정축재를 수사하게 되면 그의 구속은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전라도 지역은 물론 서울에서도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럴 경우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없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10월19일 일요일 아침 9시, 나는 청와대 관저로 김태정 검찰총장을 불렀다. 집무실로 부르면 당장 신문에 보도되기 때문에 일요일 아침을 택해 관저로 부른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김태정 총장에게 (대통령 선거 이후로 비자금 수사를 미룰 것을) 지시했다.”
이회창 회고록(2017년)
“1997년 10월 초 정형근 의원이 큰 보따리를 들고 나에게 왔다. 김대중 총재의 670억원 비자금 자료라면서 내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세한 자금 출처와 보관자 그리고 수표 사본 등이 첨부된 방대한 자료였다. 정형근 의원은 우리 당의 정보통이었다.”
“밤새워 고민하던 나는 결국 여러 가지 이해타산을 접고 내가 지녀온 한 가지 원칙, 즉 무엇이 정의인가를 가지고 결단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강삼재 사무총장을 불러 비자금 자료를 건네주고 당 차원에서 공개, 발표할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김 대통령이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디제이 비자금에 대한 수사 중단을 지시했고 검찰은 하필이면 내가 국회에서 대표 연설을 하는 동안에 수사 중단을 발표했다.”
“나는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김 대통령에게 탈당 요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국민은 그 진실에 대해 궁금해했다.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일단 그 진실을 밝혀내면 되지, 선거기간 중 대선 후보를 어떻게 구속한다는 말인가.”
“디제이 비자금 수사 중단 지시는 이 수사가 여론의 향배에 따라 1992년에 있었던 김영삼 대통령 자신의 대선자금 조사로까지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당시 검찰이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을 수사했어야 한다는 이회창 후보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김대중 후보 비자금 의혹은 실체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자료를 가져온 정형근 의원은 공작을 일삼던 국가안전기획부의 대공수사국장 출신이었습니다.
설사 비자금 의혹 가운데 일부가 사실이라고 해도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특정 후보의 정치자금을 전면 수사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요? 그 당시 정치인들은 대개 정치자금을 받았습니다. 정치자금 수수 자체가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회창 후보의 비자금 폭로와 검찰 수사 요구는 기본적으로 선거 기획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법 만능주의’였습니다. 그것도 ‘내로남불’이었습니다. 정작 이회창 후보 자신은 5년 뒤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한나라당이 대기업에서 거액의 대선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드러나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따라서 1997년에 김영삼 대통령과 검찰이 김대중 후보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와 상식이 살아 있었습니다.
정권과 검찰의 관계가 역전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판사 출신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2003년 3월9일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민낯을 드러낸 검사들은 망신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검찰은 이미 정권보다 훨씬 더 힘센 존재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복수극이 펼쳐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조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번에는 검찰이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수사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8년 1월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착각이었습니다.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구호에 불과했습니다. 적폐청산 구호 아래 실제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것은 검찰이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전 정권 비리 의혹 수사를 오래 끌지 말라고 검찰에 요구했습니다. 검찰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윤석열 지검장을 문재인 대통령은 오히려 검찰총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정권과 검찰의 싸움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승자는 언제나 검찰이었습니다. 패배자는 언제나 정권과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정권과 검찰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의 탄생은 검찰이 결국 정권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을 의미합니다. ‘검찰 왕국’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최종 승자 검찰의 앞날에는 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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